여론조작 부인…“공감 눌러도 기사는 네이버가 걸어”
檢, 실형 구형…구체적 의견 없이 “증거인멸 우려”
포털 댓글의 ‘공감’ 수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드루킹’ 김동원(49)씨는 4일 “금전적 이익은 네이버가 챙겼다”며 “떼놈(되놈)이 곰을 고소하고, 악어가 악어새를 고소한 격”이라고 했다. 그는 “(댓글 공감을 조작한 것을) 시인하고, 물의빚은 데 대해 사과드리고 반성한다”면서도 “사회·도덕적 비난과 별도로 네이버의 고소와 검찰의 기소는 법리적으로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김씨는 기소된 직후부터 혐의를 인정하며 ‘빠른 재판’을 요구해 왔다.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고 풀려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재판에서 태도가 돌변했다. 혐의를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포털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드루킹’ 김동원(49)씨가 4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뉴시스 |
김씨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김대규 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자신의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주장했다. 김씨는 최후진술 기회가 주어지자 미리 준비해 온 A4 용지에 쓰인 글을 읽었다. 모두 여섯 장 분량이었다. 그는 “매크로를 사용한 공감 클릭은 네이버 시스템에서 통상적인 부분이지, 부정하거나 허위 정보를 입력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당시 네이버는 약관에서 자동화 프로그램을 금지하지도 않았다”며 “제한속도나 처벌규정이 없는 도로에서 시속 200km로 달렸다고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오히려 “트래픽에 기반해 광고수익을 얻는 네이버에게 (자동화 프로그램을 통한) 트래픽 증가는 곧 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속담에 재주는 곰이 피우고 돈은 떼놈이 번다는 말이 있다”며 “공감 행위로 금전적 이득은 네이버가 다 챙겼는데 떼놈이 곰을 고소하고 악어가 악어새를 고소한 것과 같다”고 했다.
여론을 조작한 게 아니라는 주장도 폈다. 그는 “피고인들이 아무리 많은 공감을 클릭해도 사이트 대문에 기사를 올리는 건 편집권을 가진 네이버”라고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며 “드루킹 일당의 범행으로 네이버 자체의 신뢰가 추락했고, 주가까지 하락해 금액으로는 산정할 수 없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다”고 했다.
검찰은 김씨 등에 대해 실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준비가 덜 돼 별도의 의견서를 제출하겠다며 구체적인 구형(求刑)량은 밝히지 않았다. 검찰은 “장기간에 걸쳐 여론을 조작하고 죄질이 불량하다”며 “김씨 등의 더 많은 범행에 대해 수사가 진행 중이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는 만큼 실형을 선고해 달라”고 했다.
석방을 원하는 김씨의 속내는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검찰이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결심공판을 미뤄달라”고 하자 황당하다는 듯 실소(失笑)를 했다. 담담한 표정으로 재판을 지켜보다 김 판사가 검찰의 연기 요청에도 일리가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하자 돌연 안색이 어두워지며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김씨의 표정은 김 판사가 “결심을 진행하겠다”고 하자 평온한 상태로 돌아왔다.
김씨는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회원들과 공모해 지난 1월 네이버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관련 기사에 청와대 등을 비판하는 댓글 50여개에 총 2만3800여차례 공감을 자동 클릭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김씨 외에 일당 3명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또 같은 달 정부의 부동산 대책 관련 기사에 달린 ‘국토부 장관 책임져라’는 댓글에 373회 공감하는 등 이틀간 댓글 1만6600여개에 총 184만3000여 차례에 걸쳐 공감이나 비공감 클릭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김씨 등에 대한 선고는 오는 25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박현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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