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우여곡절 끝에 난민 문제 합의…합동난민심사센터 건립·역내 난민 이동 제한

유럽연합(EU)이 10시간에 달하는 마라톤협상 끝에 역내 최대 현안인 난민 문제에서 접점을 찾았다. 난민 문제를 놓고 EU 전체가 분열하는 불상사는 피했지만, 외신들은 “갈등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잠시 지연시켰을 뿐”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EU 28개 회원국 정상은 28~2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의을 열어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EU 역내에 난민 망명신청을 처리하는 합동 난민심사센터를 건립하고 △EU 외부 국경을 통제하며 △EU 회원국 간 난민 이동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우선 회원국들은 “자발적 의사에 따라” EU 역내에 합동난민심사센터를 건립, 난민 지위 인정 여부를 심사하게 된다. 이곳에서 보호가 필요한 ‘난민’과 본국으로 송환돼야 하는‘경제적 이민자’를 가리게 된다. “난민 신청자가 처음 도착한 국가에서 심사를 책임진다”는 ‘더블린 원칙’을 보완해, 중동·아프리카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남유럽 국가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느 국가에 난민센터를 설치할지는 결정하지 않았다.

회원국들은 EU 외부 국경 통제에도 합의했다. 선언문은 “유럽이사회는 2015년 (난민 신청자들의) 무절제한 유입으로 회귀하는 것을 막고 기존 모든 경로와 새로운 경로에서의 불법 이주를 단호히 저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난민 캠프가 있는 터키, 난민 발생국인 북아프리카, 아프리카와 유럽의 기착지인 모로코에도 경제적 지원을 늘리기로 합의했다. EU는 북아프리카와의 협상을 통해 EU 국경 바깥에 난민심사센터 설립하는 방안도 계속 추진할 방침이다.

마지막으로 선언문에는 EU 역내에 머무르고 있는 난민 신청자들의 자유로운 이동도 제한된다. 난민들의 ‘최종 목적지’였던 프랑스나 독일의 이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모두 유럽으로 넘어온 난민 신청자들에게는 불리한 조치다.

EU 정상들이 해법을 도출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회담 첫날인 28일, 회원국들은 이견이 적은 경제·안보·디지털 분야에 관한 공동선언문부터 우선 채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서명 직전 난민 문제를 꺼내 들면서 채택이 무산됐다. 주세페 콘테 총리는 “난민 문제에 관해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어떠한 의제에도 합의할 수 없다”고 맞섰다. 회원국들은 이어진 추가 협상을 통해 힘겹게 합의에 도달했다.

EU는 2015년 대규모 난민 유입 이후 남부와 북부, 동부와 서부로 쪼개져 갈등을 지속해왔다. 헝가리,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은 EU 회원국들이 난민 수용 부담을 나눠지는 ‘의무 할당제’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의 ‘현관’ 역할을 하는 남유럽 국가들의 반발도 컸다. 이들 국가에는 대부분 반이민·민족주의 정책을 내건 우파·포퓰리즘 정부가 들어섰다.

이번 합의는 난민 문제에 있어 EU 차원의 공동 대응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번 회담에서도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면 EU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콘테 총리는 “(협상 내용에) 만족한다”며 “오랜 협상이었지만 오늘부터 이탈리아는 더이상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유럽의 협력이 이날의 합의를 가능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난민 문제로 퇴진 위기까지 갔던 메르켈 총리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메르켈 총리의 연정 파트너인 독일 기독사회당은(CSU)은 다른 국가에서 난민 신청을 한 이들이 독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독일 내부 국경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난민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연정 탈퇴까지도 고려하겠다고 메르켈 총리를 압박했다.

다만 정작 즁요한 ‘디테일’은 빠져있다는 평가가 많다. 당장 EU 어느 국가에 합동 심사센터를 설치할지, 어떻게 심사 절차를 진행할지가 뇌관으로 남았다. 도이치벨레는 “이날의 합의는 상황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지연시켰을 뿐”이라며 “독일로 유입되는 망명 신청자들이 늘어나면 기사당이 다시 반발할 여지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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