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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책과 삶]유폐된 땅에서 찾는 희망과 위로의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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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델핀 미누이 지음·임영신 옮김

더숲 | 244쪽 | 1만4000원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어느 날 저자가 발견한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한다. 프랑스 출신의 저널리스트인 델피 미누이는 터키의 이스탄불에 체류하고 있었다. 2015년 어느 날, 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발견한 사진은 생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책이 빼곡하게 들어찬 벽에 둘러싸인 두 남자의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와도 같았다.

지옥같은 시리아, 그것도 하필 내전의 중심지인 다라야에서 어떻게 이런 사진이 가능하단 말인가. 8년째 이어진 시리아 내전에서 사망한 사람은 35만명이 넘는다. 1000만명 이상의 난민도 발생했다. 다마스쿠스 외곽의 다라야는 그중에서도 상황이 참담한 지역이다. 2011년 평화적 시위의 발원지 가운데 한 곳이며, 2012년부터 시리아의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의 정부군이 포위해 공격한 곳이다.

사진 속의 두 남자 가운데 한 명은 고개를 숙인 채 책을 보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책장을 주의깊게 살피고 있다. 둘 다 20대 젊은이다. 한 명은 운동복 윗도리를 어깨에 걸쳤고 또 한 명은 모자를 눌러 썼다. 창문 하나 없는 폐쇄된 공간에서 인공의 불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저자는 이 사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내뿜는 가냘픈 숨소리였다.”

연일 쏟아지는 포탄과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의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이런 장면이 가능하단 말인가. 분쟁지역을 전문적으로 취재해온 저자는 현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솟구쳤다. 하지만 이스탄불에서 다라야까지는 1500㎞, 게다가 그에게는 다마스쿠스로 들어갈 수 있는 비자가 없었다. 특히 다라야는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을 하려던 유엔조차 들어갈 수 없었던, 철저하게 봉쇄된 지역이었다. 할 수 없이 저자는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마침내 사진의 촬영자인 아흐마드 무자헤드를 찾아낸다.

3년째 외부로 나오지 못한 채 다라야에 고립돼 있던 무자헤드는 다마스쿠스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축구와 영화를 좋아하고 정원에서 식물 가꾸기를 즐기던 23세의 청년이었다. “(기자를 꿈꾸던) 아흐마드는 외부 세계와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었던 인터넷을 통해 황폐해진 자신의 마을과 무너진 집들, 화염과 폭발로 분진이 자욱한 현지의 소식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렇게 소란한 가운데서도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서 수천 권의 책을 구해내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곳에 모아 만든 ‘책으로 된 피난처’ 이야기도 해주었다.”

경향신문

이 책은 바로 그 ‘피난처’에 대한 이야기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은 청년들이 폐허가 된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어렵게 모은 1만5000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었다. 저자는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와 메시지 등을 통해 약 2년간 현지의 청년들과 대화를 나눴고 그 내용을 책 속에 풀어냈다.

도서관 책임자인 23세의 청년 아부 엘에즈도 공학을 전공하던 청년이었다. 아흐마드 무자헤드가 그랬듯이 원래는 그도 책을 별로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2015년 9월 책 창고로 가다가 포탄의 파편에 목을 찔려 신경계 손상을 입었다. 몇 달 동안 병원에 누워 있다가 퇴원한 그가 컴퓨터 화면 너머에서 저자에게 “새로운 열정의 대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수단이자 영원히 무지를 몰아내는 방법입니다. 책은 지배하지 않아요. 무언가를 선사해주죠. 책은 성숙하게 합니다. 한 권 한 권의 책이 마치 처음 맞닥뜨린 귀중한 성자의 유물과도 같습니다.”

어느 날 아흐마드 무자헤드가 인터넷 화상으로 저자에게 연결시켜준 24세의 오마르는 위대한 석학들의 책을 다수 섭렵한 지적인 청년이었다. 그는 반군의 젊은 병사이기도 했다. “정부군이 우리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시위 참가자들을 보호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학업을 중단하고 항전에 자원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무기를 들었죠.”

저자는 일부러 그를 자극한다. “당신은 스스로를 지하디스트라고 생각합니까?” 오마르의 얼굴은 잠시 어두워졌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만일 제가 체제에 맞서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것은 고향을 지키고 싶어서입니다. 친구들이 그저 변화를 요구하는 팻말을 흔들다가 당신의 눈앞에서 스러진다면, 다른 시위자들을 보호하려는 마음 말고 더 무엇이 있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여기에서 모든 일이 출발했습니다. 정부군의 폭격 아래에서 폭력의 악순환이 시작됐습니다. 우리를 광신도로 보이게 함으로써 우리 이미지를 손상하려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저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다만 이슬람교도일 뿐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문화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교를 사칭한 모든 것에 반대합니다.”

책은 이렇듯이 다라야에 ‘갇힌’ 이슬람 청년들의 육성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달 동안에만 933개의 드럼통 포탄이 투하되는” 유폐된 땅에서 희망과 위로의 근거를 찾아보려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자신과 인터뷰했던 다라야의 젊은이들 가운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오마르를 추모하면서 책을 끝맺고 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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