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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음식 한류 이야기] 인생이라는 보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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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이라고 불리는 '최후의 만찬' 그림 속 예수는 그를 따르는 열두 제자와 함께할 마지막 만찬 테이블에 앉아 있다. 요리에 관심이 많아 식당까지 차렸던 것으로 알려진 다빈치가 이 만찬 메뉴로 선택한 것은 생선과 빵 몇 조각이었다. 소박한 만찬 테이블에 앉아 평온한 모습을 보이는 예수와 대조적으로 곧 다가올 그의 죽음 소식에 심하게 동요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얼마 전 104세의 나이로 존엄사를 선택한 호주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은 가족과 마지막 만찬을 끝으로 스위스로 떠나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유 불문하고 노인이 삶을 지속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하는 도구로 내가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긴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두려움은 찾을 수 없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불편하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떼어 놓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이제는 그 두려움과 직면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 관장님의 부고를 들은 5월 28일은 벌써 그의 장례가 치러진 후였다. 얼마 전까지 서로 문자를 주고받았고 92세라는 연세가 무색하게 열정적으로 전시를 열고 그의 생애를 기념할 7권의 책 출간을 앞둔 터라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은 참으로 황망했다. 직계 가족 외 누구에게도 자신의 죽음을 바로 알리지 말라며 남기신 말씀은 이러했다. "저는 죽음을 맞으며 더 초라하게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저의 삶이 작게나마 인류사회에 도움이 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모든 분들이 건강하시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도록 축복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 저처럼 죽음이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것을 체험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소천하시기 전날 병실에서 열린 문집 초본 기념회에서 가족들에게 남긴 음성을 부고글로 전한 것이다. 구순의 나이에 간병 자리를 지킨 부인의 손을 잡고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다는 그분이 남긴 마지막 전언은 기쁨일 수도 있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지에 관한 것이다.

매일경제

"코다리찜 백반을 사주면 내 가르쳐 주지." 싱긋이 웃는 얼굴로 어떻게 하면 우리 고미술품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을지 보채며 묻는 내게 곁을 내어주신 보자기 할배, 허 관장님과의 인연은 이렇게 20년 전 장안평 골목길에 있는 백반집에서 시작됐다. 조급하게 배우고 싶은 내게 들려준 말씀은 의외로 단순했다.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있으면 돼. 규방 안에 갇혀 살았던 여인들의 삶을 알고 싶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지. 쇠로 만들어진 칼과 바늘을 생각해 봐. 여인들은 이 두 가지를 쓰며 하루를 보냈던 거야. 칼로 재료를 잘라 음식을 준비하고, 바늘로 해진 옷을 깁고 수도 놓으며 말이야. 하나로는 무엇을 자르고 또 다른 하나로는 무엇을 잇는 작업을 반복하고 살았던 삶이 남긴 것이 무엇일까. 한국인에게만 남은 특별한 '어머니'의 흔적이야. 보자기를 한번 봐봐. 모난 것도 둥근 것도 다 감싸서 그것을 지고 이고 나르고 난 후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나면 한 줌도 안 되게 접히잖아. 나는 볼수록 보자기가 어머니 같아서 좋아. 그런 애정으로 고미술품을 보다 보면 자기 마음에 특별히 잡히는 품목이 보일 거야. 그것부터 하나씩 수집해봐."

숨 쉬는 우리의 김치나 장을 담았던, 모래를 섞어 만든 옹기에 대한 관장님의 설명과 그 질박한 멋에 반해 옹기를 모으게 되었고 이는 몇 년 후 내가 '장'을 기반으로 하는 한식당을 여는 계기까지 되었으니 단돈 4000원의 코다리찜을 수업료로 내고 나는 너무나 큰 가르침을 받게 된 것이다.

관장님과 최후의 만찬은 갖지 못했어도 함께한 최초의 백반은 다름을 인정하고 넉넉하게 모든 것을 안으며 또 한 줌으로 접히게 되는 인생이라는 보자기를 배운 위대한 수업으로 내게 남아 있다.

[한윤주 한식전문가(콩두 푸드&컬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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