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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토)

[His 스토리] 36년 ‘인텔맨’ CEO, 사내연애로 불명예 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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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반도체 기업인 인텔의 수장,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21일(현지 시각) 불명예스러운 사임을 발표했다. 사내연애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인텔의 6번째 CEO인 크르자니크는 지난 36년 동안 인텔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인텔은 이날 성명을 내고 “최근 조사를 통해 크르자니크 CEO가 관리자급 직원에게 적용하고 있는 사내연애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크르자니크의 사임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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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CEO는 21일 사내연애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사임했다. /인텔


◇ ‘실리콘밸리 중심’ 출신 크르자니크…인텔 엔지니어에서 CEO까지

크르자니크는 195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서 태어났다. 산타클라라는 미국의 첨단기술 연구단지인 ‘실리콘밸리’의 중심지로, 인텔 본사가 자리한 곳이다. 크르자니크는 산호세 주립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1982년 인텔 뉴멕시코 공장의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이후 1996년 공장 감독직을 맡으며 관리자로서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승승장구한 크르자니크는 인텔의 부사장과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2013년 5월, CEO자리에 올랐다.

크르자니크는 지난 5년의 임기 동안 PC 중심의 체제를 데이터 중심 체제로 변환하는 데 주력했다. 크르자니크는 인텔의 사업 부문을 인공지능(AI), 무인항공기,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 장치, 5G 등으로 확장시켰다. 크르자니크는 또 지난 2016년 자율주행 차량 소프트웨어 장치를 개발하는 이스라엘 업체, 모바일아이(Mobileye)를 153억달러(약 16조원)에 인수하는 등 인텔의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지휘했다.

크르자니크가 추진한 모든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미국의 IT 전문 매체 씨넷은 “크르자니크의 임기 동안 인텔은 가상현실(VR)과 모바일 부문에서 경쟁업체에 밀려났다”고 했다. 인텔은 지난해 웨어러블 시장에서도 완전히 발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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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CEO는 2018년 6월 1일 “인텔에 있는 모든 성소수자(LGBTQ) 친구들에게, 행복한 자긍심을!(To my friends in the LGBTQ community from all of us at Intel, happy #Pride!)”이라는 글과 함께 인텔 로고가 박힌 무지개 깃발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무지개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상징한다. /크르자니크 트위터


크르자니크는 사내 소수자의 고용 안정을 위한 개혁도 시도했다. 크르자니크는 지난 2015년 여성과 비주류 소수층 기술직과 관련한 고용 인력 다양화 계획을 발표했다. 크르자니크는 이 계획을 위해 2020년까지 여성과 소수층 엔지니어 등의 고용 유지를 지원하기 위해 3억달러(약 333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크르자니크가 CEO로 있는 동안 인텔의 주가는 약 120% 상승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매출도 약 18% 증가했다. 뉴욕타임스(NYT) 자체 조사에 따르면 크르자니크의 지난해 연봉은 2150만달러(약 238억원)로, 미국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CEO 순위 60위에 올랐다.

◇ 36년 ‘인텔맨’ 크르자니크, 불명예 퇴진…“미투 운동 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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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크르자니크(왼쪽) 인텔 CEO와 그의 부인 브랜디 크르자니크. /크르자니크 트위터


36년 간 인텔맨으로 몸담은 크르자니크의 결말은 불명예스러웠다. 크르자니크는 21일 사내 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사임했다. 크르자니크는 지난 1998년 지금의 아내인 브랜디 크르자니크와 결혼해 십대인 두 딸을 두고 있다.

인텔 이사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최근 조사에서 크르자니크가 인텔 직원과 ‘합의된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사회는 모든 직원이 회사의 가치관을 존중하고 행동 강령을 엄중히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크르자니크의 사임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인텔은 관리자급 이상 직원들에게 사내연애를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 인텔은 크르자니크가 사임하거나 은퇴할 경우 3800만달러 규모의 보상금을 받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현재 인텔은 크르자니크가 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인텔 이사회는 크르자니크 사임 발표 이후 로버트 스완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임시 CEO직을 맡겼다고 밝혔다. 스완 CFO는 2016년 이베이에서 인텔로 적을 옮겼다. 이사회는 회사 내외부에서 차기 CEO 후보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크르자니크의 사임이 미국에서 촉발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여파라는 분석이 나왔다. NYT는 “크르자니크의 사임은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 폭로 사건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 이후 고위 중역진들이 겪고 있는 혼란의 가장 최신 사례”라며 “직장 내 성희롱, 성평등 관련 감독이 강화되면서 나이키, 룰루레몬 애슬레티카 등 많은 기업의 중역들이 회사에서 축출됐다”고 전했다. 영국 가디언도 “크르자니크의 사임은 미투 시대에 영향을 받은 미국의 새로운 기업 정신에 부합한다”고 했다.

◇ 크르자니크 떠난 인텔, 경쟁 밀려나나…‘기회’라는 전망도

업계에서는 크르자니크가 떠난 인텔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날 인텔 주가는 2.4% 하락했다. CNBC ‘매드머니’ 진행자 짐 크래머는 이날 “크르자니크의 사임 소식에 놀랐다”며 “크르자니크는 매우 사려깊은 인물이고, 인텔을 재창조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자문회사 에버코어 ISI의 C.J 뮤즈 애널리스트는 “크르자니크가 사임한 것은 확실히 좋지 못하다”며 “엔비디아, AMD 등 경쟁사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미 투자은행 코웬앤컴퍼니 매튜 램지 애널리스트는 “크르자니크는 인텔이 어려운 시기에 사임했다”며 “지난 2015년부터 회사의 주요 고위직 임원들이 연달아 사임했기 때문에 내부에서 후임자를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크르자니크가 떠난 것이 인텔의 성장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슈로트 리서치 설립자인 라이언 슈로트 애널리스트는 “인텔은 크르자니크가 떠나면서 황금 기회를 얻었다”며 “(크르자니크 후임으로) 적절한 CEO가 임명되면 인텔은 AI, 5G 등 다양한 개발 영역의 목표 달성을 가속화하고, 치열한 경쟁 중에 있는 생산 프로세스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선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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