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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대기업 CF 휩쓴 용이 감독, SNS에 전력투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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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용이 감독(오른쪽 인물)은 "과거의 분류에 의해 분류된 직업군에 속해 있고 싶지 않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사진제공=라이카카메라코리아(포토그래퍼 최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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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인사이드-120]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를 연출하며 주목받은 영화감독이자 삼성전자, 네이버, 대한항공, 현대차, 소니, 아우디, 유니클로 등 국내외 대기업 CF광고를 도맡았던 인물. 여기에 더해 빅뱅, 버스커버스커, 위너, 악동뮤지션 등 뮤직비디오도 연출했지요. 업계 유명 인사 용이 감독 프로필입니다. 대한민국 광고대상 금상, MTV재팬 'Best Pop Music Video', 스파이크아시아 동상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합니다.

그를 만난 건 독일 카메라의 명가 라이카 본사에서였습니다. 저는 기자단 자격으로, 용 감독은 촬영 전문가 자격이었습니다. 100년이 훌쩍 넘은 독일 명문 장수기업이라지만 '사알못(사진 잘 알지 못하는)' 기자로서는 아무래도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야 했기에 용 감독과 출장 기간 내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올해 들어 바쁘고 밤새는 일도 많은데 너무 즐겁고 설렌다는 겁니다. 무슨 일을 하기에 그런가 해서 알아봤더니 요즘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 새로운 계정을 만들고 자체 제작 영상을 올려 폴로어 늘리기에 푹 빠졌다네요. 인플루언서가 대세가 되는 세상이니 본인도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가 보다 하고 넘기려 했는데요. 아차! 용 감독은 이미 유명 인사, 즉 이쪽 업계 전문 용어로는 메가인플루언서 대열에 속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미 폴로어 수도 상당했고요. 그런데 왜 굳이 또 새 계정 폴로어 수 늘리기에 집착하나 싶었지요. '아직 싱글이라는데 장가가고 싶은 건가? 혹시 관종?'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는데요. 용 감독에게 직접 사연을 들어보니 실은 거대한 미디어 산업의 변화, 직업의 종말 등 다양한 화두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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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요즘 SNS로 단편영화를 연재한다고요?

A '식물 힐링 드라마(이하 식물 드라마)'라는 SNS 전용 드라마입니다. 한 달 전에 인스타그램에 '@sikmul_drama'란 계정을 만들었는데요. 폴로어는 1100명 정도, 피드당 조회 수는 5만이 넘기도 한답니다. 유튜브 계정도 만들어서 인스타에서 짧은 영상을 본 후 유튜브에서 본 영상을 보는 식으로 유도하고 있어요.

Q 식물이라….

A 식물 드라마는 말그대로 식물이 주제 혹은 소재, 소품으로 등장하는 드라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띵드(Thing+drama)'라는 애칭을 붙여봤어요. 누가 압니까. 콘텐츠 브랜드 장르가 될지(웃음). 사실 이 일은 누군가의 제안이나 오더로 시작한 게 아닙니다. 원고 작성, 콘티, 섭외, 제작, 편집은 물론 제작 예산을 개인 비용으로 다 충당하고 있지요. 매주 하나씩 올리자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밤샐 때가 많아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게재 시점 정하고 혼자 마감 일정 맞추느라 분주하고 그럴 때도 있고요. 디지털 장비들이 좋아지면서 거품 빠진 예산으로 영상을 만들 수 있게 된 게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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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런데…. 왜… 고생을 사서 하세요? 지금도 CF 제작 의뢰 많이 들어온다면서요?

A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걸 체감했거든요. 기존에 제가 하던 작업은 오더 메이드, 즉 누군가가 저에게 일을 발주하면 시작하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일을 수동적으로 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연출보다 주문받는 일들에 따라 제 작업물이 쌓이고 그게 제 실력이고 제 색깔이 되어 가는 게 아쉬웠습니다. 기존에 광고는 '미디어 퍼스트, 크리에이티브 폴로'라는 방식이었어요. TV CF, 뮤직비디오라는 양식이 주어지면 거기에 맞춰 저와 같은 크리에이터가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크리에이티브 퍼스트, 미디어 폴로' 시대가 됐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제가 예전의 미디어 환경에 갇혀서 단순히 TV 광고, 뮤직비디오만 만드는 감독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아이디어가 있으면 누군가에게 의뢰받지 않아도 먼저 제작하고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저작권 보유 욕심도 있어요. 제 작업은 저작권과는 좀 거리가 멀어요. 음악이나 영화는 콘텐츠 저작권을 인정받고 수익이 발생하는데 광고나 뮤직비디오 감독은 작품당 연출료가 전부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유튜브에 올라간 뮤비나 영상들이 수익을 창출해 내고 있는 시대로 바뀌었잖아요. 광고, 뮤비 감독도 그에 대한 저작권을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돼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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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종의 직업에 대한 위기 의식이 작용했던 거군요.

A 네. 과거의 분류에 의해 분류된 직업군에 속해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Q 매주 업로드를 목표로 한다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A 제 첫 장편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제작할 때 생각이 많이 나요. 저에게는 사실 매우 부끄러운 데뷔작이지만 그때 참 다양한 시도도 해보고 자유롭게 매일매일 설레면서 촬영했거든요. 지금이 딱 그래요. 영상을 시작했던 초창기처럼 설레고 두려우면서도 좋아서 하는 '사서 고생'이라 밤을 새우며 편집을 하고 시나리오를 만들어도 너무 재미있어요. 신나게 하고 있습니다.

Q 뉴미디어가 계속 등장하고 있고 짧은 동영상, 드라마도 넘쳐나고 있는데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A 영상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광고도 예전엔 한번 만들면 6개월에서 1년 정도 계속 틀었는데 요즘은 그 기간이 매우 짧아졌어요. 덩달아 모델 계약도 3개월 단위로 단축됐을 정도지요. 그러다 보니 고품질 영상보다는 시의적절한 영상이 더 우선시되기도 하고 고도의 전략이나 마케팅 기법보다는 유행에 따라가기 바쁘기도 합니다. TV광고는 대기업 제품, 기업 이미지 광고 혹은 고령층 타깃 광고가 많아지는 반면 화장품이나 패션 등 영상에 더 열려 있는 브랜드 장르는 뉴미디어로 대부분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저는 제가 갖고 있는 고품질 영상 제작 경험과 노하우는 살리되 SNS 등 새로운 미디어에 맞춤형으로 만들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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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웹드라마가 점차 활성화되면서 이미 일부 드라마 감독들이 이쪽으로 눈을 돌리기도 하던데요.

A 물론 그랬지요.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지사나 중국의 글로벌 기업 등에서 한국의 웹드라마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도 했고요. 그런데 그때 웹드라마 감독들이 여러 작업을 진행했는데 광고와 순수 창작콘텐츠 사이에서 길을 잃고 좌초한 적이 꽤 많았어요. 광고와 영화, 뮤비 등 다양한 장르를 다뤄본 만큼 식물드라마를 기점으로 다른 대안과 수익모델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Q 콘텐츠로 수익을 얻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인데….

A 일단 자체 콘텐츠 브랜드화를 통해서 플랫폼이 되는 길을 모색 중입니다. 그 이후엔 콘텐츠와 잘 어울릴 만한 좋은 브랜드들과 PPL형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식물드라마를 '띵드(Thing+drama)'라고 한 이유를 이제 아시겠죠? 콘텐츠 브랜드의 첫 라인업이고요. 이후로는 향수 드라마, 맥주 드라마 등 다양한 형태의 띵드 라인업이 대기 중입니다.

Q 미디어 시장에서 광고, 드라마 등 콘텐츠는 어떤 식으로 흘러갈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A 몇 년 전 한 외국 광고포럼에서 필립스 마케팅 디렉터가 이런 발표를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걸 보기 전에 어쩔수 없이 봐야 하는 짜증나는 영상(광고) 을 만들고 있다"란 말이었는데요. 광고는 말그대로 5초 스킵(건너뛰기)을 버텨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기업의 재미없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도 믿지도 않으니까요. 어떤 사람은 광고는 앞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세금 같은 것이 될 거라고도 했습니다. 광고 없는 유료 결제냐, 재미 없는 광고를 다 보고 무료로 보느냐의 선택에 놓인 시대인 거죠. 실례로 넷플릭스는 수익성을 위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광고 없이 월 이용료 5달러 정도 인상안과 지금 금액을 유지하면서 광고를 보는 안 중에서 대부분 가입자가 5달러 인상하더라도 광고를 보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광고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질 높은 콘텐츠를 만드는 게 우선이고 대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 믿습니다.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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