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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시시비비] 국민에게 월드컵을 선물하는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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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공은 둥글다. 22일 새벽에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가 크로아티아에 0대 3으로 패했다. 스웨덴에 0대 1로 패한 한국에 비하면 충격의 급이 다르다. 그야말로 핵폭탄이 터진 격이다. 아르헨티나가 어떤 팀인가. 축구의 신으로 불리는 리오넬 메시의 팀이다. 골키퍼의 실수가 팀을 무너뜨렸다. 둑이 무너지자 아르헨티나 '메시아' 메시라도 막을 재간이 없었다.

최근 경제 상황 악화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어려운 경제로 고통 받는 상황에서 세계 일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축구에서나마 위로를 받으려 했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크로아티아의 승리를 지켜보면서 52년 전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던 경기가 떠올랐다. 북한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이겼다. 아시아 국가 최초 월드컵 본선 첫승이다. 8강에도 진출했다. 월드컵 역사상 최대의 이변으로 꼽히는 장면이다.

북한 축구는 북한의 흥망성쇠와 연결해 볼 수 있다. 1960년대 북한은 경제에서 한국에 앞서 있었다. 1960년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는 137달러로, 우리 94달러의 1.5배나 됐다. 지금은 비교할 수도 없지만 당시만 해도 발전량은 북한이 남한에 비해 5배나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축구까지 세계 8대 국가에 끼었다면 당시 북한의 위세가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거기까지였다. 1960년대 이후 북한 축구와 경제는 동반 추락을 거듭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의 과정에서 폐쇄를 선택한 북한 경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도 아니고 20세기 후반 아시아에서 기아로 허덕이는 고난의 행군이 벌어졌다는 것을 전 세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경제 개발 대신 탈출구로 핵과 미사일을 선택했다. 중국도, 베트남도 개방을 통해 경제부터 살리려 앞서나가는 동안 뒷걸음질만 쳤다. 물론 성과는 있다. 스스로 핵보유국으로 자처하며 북ㆍ미 정상회담을 통해 입지를 전 세계에 과시했다.

북한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44년 만에 월드컵 무대로 돌아왔지만 그때뿐이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도 예선 탈락하며 우방국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초청받지 못했다. 핵개발에 국력을 모은 나머지 축구에는 투자를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모든 학생에게 축구공을 지급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약 100만개의 축구공이 필요한 사업이지만 북한 경제력으로는 이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이 1970년대 이후 정체를 거듭하는 동안 한국은 착실히 경제를 키웠고 축구도 강해졌다.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하며 국력을 키워왔다. 한국 기업은 월드컵의 후원사로 성장했다. 대통령은 첫 해외 원정 응원에까지 나섰다.

북한은 6ㆍ12 북ㆍ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뭔가 바뀌고 있다는 인식을 얻기에 부족하다. 비핵화의 발걸음은 빨라지지 않았다. 행보가 굼뜨다 보니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북한의 결단을 다시 촉구하고 나섰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북은 핵이 아닌 경제 개발에 집중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보내야 한다. 국내적으로도 무력이 아닌 경제 강국이라는 희망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북한 국민이 월드컵 거리 응원에 나서는 순간 한반도 평화의 시대는 자명해질 것이다.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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