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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홍영림의 뉴스 저격] 2명 중 1명이 "黨만 보고 시도지사 찍었다, 공약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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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 선거 후 여론조사로 풀어본 6·13 민심

지난 6월 13일에 실시된 시·도지사와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의 공약도 모르고 선택한 투표자가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광역(시·도)의회와 기초(구·시·군)의회 선거에서는 투표자의 절반 정도가 자신이 찍은 후보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가 중앙 정치에 휘둘리면서 인물과 공약은 뒷전으로 밀리고 정당만 보고 찍는 '묻지마 투표'로 진행됐다는 의미다. 지난 6월 17~18일 본지가 케이스탯리서치(옛 월드리서치)와 함께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선거 사후(事後) 조사 결과는 6·13 지방선거 투표 행태와 승패 요인을 보여준다.

◇절반이 지방의원 이름 모른 채 투표

6·13 지방선거는 광역단체 17곳 중 14곳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 이번 조사에서 시·도지사 선거에 참여한 투표자에게 자신이 찍은 후보의 공약을 알고 있는지 물어본 결과 '알고 있다' 53%, '모르고 있다'47%였다. 친(親)전교조 출신 당선자가 전체 17명 중 14명인 교육감 선거에선 투표한 후보의 공약을 '모르고 있다'(55%)가 '알고 있다'(45%)보다 더 많았다.

특히 이번 조사에선 자신이 찍은 교육감 후보의 이름도 모르는 투표자 비율이 25%였다. 교육감 선거는 투표용지에 정당명과 기호 표시가 없고 출마자 이름만 적혀 있어서 기표(記票)를 할 때 지지 후보의 이름을 정확히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투표자 4명 중 1명은 교육감 후보의 이름도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찍었다는 조사 결과다. 전국적으로 교육감 선거에 참여한 투표자가 2583만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아무런 선택 기준 없이 후보를 대충 찍은 투표자가 645만명(25%)에 달했다는 것이다. 교육감 선거에서 기표를 잘못했거나 투표용지에 아무도 찍지 않은 무효표(97만표)도 여기에 포함됐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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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원 선거도 '깜깜이' 수준이 심각했다. 자신이 찍은 후보의 이름을 '모른다'는 응답이 광역의원 선거는 48%, 기초의원 선거는 과반수인 58%에 달했다. 전국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이 광역의원(79%)과 기초의원(56%)을 대거 당선시킨 것은 시·도지사 후보와 연계해 정당만 보고 1번을 찍은 '줄투표' 영향이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유권자 한 명이 7~8표를 행사하는 지방선거 시스템으로는 앞으로도 후보들의 면면을 따져가며 선택하기 어렵다"며 "미·북 정상회담 같은 메가톤급 이슈로 인물과 정책 대결이 사라진 것도 영향이 컸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선거 사후 여론조사'는 비교적 정치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참여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후보 이름과 공약을 모르고 찍은 유권자가 더 많을 것으로 분석된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 광역·기초 단체장과 광역·기초 의원, 교육감 선거 등을 한꺼번에 실시하고 있으나 이로 인한 '깜깜이 선거'의 부작용이 만만찮은 만큼,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 지자체장과 지방의원 선거 등을 각각 따로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유권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다수의 무명(無名) 인사들이 아무런 검증 절차 없이 특정 정당의 바람을 타고 지방의회에 입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현재 13일뿐인 선거운동 기간을 늘리는 것도 유권자의 관심을 높이는 방법일 수 있다"고 했다. 교육감과 시·도지사가 함께 출마하는 러닝메이트제 도입 등 교육감 선거 개선책도 거론된다.

◇"야당이 싫어서 여당 찍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시·도지사 후보 선택 이유와 관련, '그 후보가 마음에 들어서'(31%)에 비해 '다른 정당 후보들보다는 괜찮아서'(63%)가 배 이상 높았다.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투표자도 63%가 '그나마 괜찮아 보여서 찍었다'고 했다. 여당 지지층의 다수는 '여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야당이 싫어서' 여당을 찍은 것으로 해석된다.

6·13 지방선거의 승부를 가른 요인도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당이 잘못했기 때문'으로 파악됐다. '민주당이 승리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란 질문에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잘못해서'가 67%였고 '민주당이 잘해서'는 24%에 그쳤다. '야당이 잘못해서'란 의견은 정치 성향별로 보수층(74%), 중도층(71%), 진보층(66%) 등의 순으로 높았다. 야당을 지지해온 보수층에서 야당에 대한 실망감이 더 컸다는 의미다. 역대 지방선거에선 주로 여당에 대한 호·불호가 후보 선택 기준이었으나 이번엔 정반대였다.

한편 '2020년 총선에서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한 정당을 계속 지지하겠는가'란 질문에는 '다른 정당으로 지지를 바꿀 수 있다'가 58%인 반면, '계속 지지하겠다'는 36%에 그쳤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게 투표한 지지층 모두 '지지 정당을 바꿀 수 있다'는 응답이 각각 55%로 같았다. '지지 정당을 바꿀 수 있다'는 의향은 중도층에서 69%로 가장 높았고 보수와 진보층은 각각 52%였다.

이번 지방선거는 패배한 야당과 승리한 여당 모두에게 무거운 숙제를 던져줬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김지연 케이스탯리서치 대표는 "지난 1년간 야당은 제대로 된 대선 패배 평가와 원인 분석도 하지 않았다"며 "인적 쇄신과 더불어 보수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 등을 분명하게 재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지금은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민주당이 우위에 있지만 경제·외교 분야 등에서 조금만 삐끗해도 우위 구도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유·무선 RDD(임의 걸기) 전화조사로 실시한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다.

黨 충성도 가장 낮은 20대, 74%가 "다음 총선에서 지지 정당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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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선거에서 20~40대는 여당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었다. 하지만 6·13 지방선거 사후(事後) 조사에서 20대는 30~40대와 달리 지지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서 앞으로 투표 성향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스탯리서치의 '지방선거 사후 조사'에서는 '나를 대변해주는 정당'이 '없다'(49%)는 의견이 '있다'(41%)보다 많았다.

특히 20대에서 '나를 대변해주는 정당이 없다'가 61%로 가장 높았다. 30대(44%), 40대(44%), 50대(49%), 60대 이상(47%) 등은 절반 미만이었다.

'다음 총선에선 지지 정당을 바꿀 수 있다'는 의견도 20대에서 74%로 가장 높았고 다른 연령층에선 50~60% 정도였다. 시·도지사 선거에서 후보 선택 이유가 '마음엔 안 들지만 다른 후보들보다는 괜찮아 보여서'란 응답도 20대에서 71%로 가장 높았다.

지난해 대선에서 20대 투표율은 74%로 5년 전 대선(68%)보다 6%포인트 높아져 40대의 75%와 비슷했다. 더 이상 '정치 무관심' 세대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김지연 케이스탯리서치 대표는 "정당 일체감이 약하고 이념보다 실용적 이슈에 관심 많은 20대는 자신의 이익과 관련해 언제든지 지지 정당을 바꿀 수 있다"며 "20대 표심(票心)을 잡으려면 참신한 리더십과 다양한 채널을 활용한 진솔한 소통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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