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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기자의 시각] 文정부 실패가 야당 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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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원선우 정치부 기자


21일 오전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는 5시간 20분간 이어졌다. 현역 의원 80여 명이 모였다. 점심시간에도 김밥이 배달됐다. 의제는 '중앙당 해체'와 '혁신 비상대책위 구성'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지방선거 패배 이후 당 활로를 찾는 비장한 분위기가 느껴질 법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실망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의총 내내 친박(親朴)과 비박(非朴) 간 삿대질과 성토만 이어졌다. 친박 의원들은 김무성계인 박성중 의원의 '목을 친다' 메모를 문제 삼으며 "김무성·박성중은 당을 나가라"고 했다. 그러자 비박계는 "뭐만 있으면 나가라고 하느냐. 말이 되느냐"고 맞받았다. 김성태 권한대행이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하고 또다시 싸우는 구조는 제 직을 걸고 용납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오히려 "김 원내대표도 사퇴하라"는 말이 나왔다. 책임지겠다거나 반성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 혁신안도 아무 결론이 없었다. 한 중진은 "허수아비 비대위로 뭘 하느냐. 우리 당에서 성공한 건 '박근혜 비대위'뿐"이라고 했다. 친박 의원들은 "우리가 왜 적폐냐" "탄핵의 법리(法理)에 문제가 있었다"며 철 지난 탄핵 논란만 벌였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하면 다음 총선에서 우리에게 살길이 생긴다"는 얘기가 나왔다.

불과 8일 전 '궤멸적 패배'를 당하고도 자기반성과 혁신은커녕 '남 탓'하며 '요행수'를 바라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당이 보여온 무능과 무책임, 무대책 정당의 모습이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당이 이런 상황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은 정당이 된다면 2년 뒤 총선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한국당은 2016년 총선 당시 허구한 날 친박·비박 다툼을 벌이다 스스로 무너졌다. 이후 친박은 박 전 대통령의 파면·구속으로 사실상 정치적 생명을 잃었다. 서청원·최경환·홍문종·이정현·조원진 의원 등 한때 '진박(眞朴) 감별사'소리를 들었던 핵심 인사들이 구속되거나 탈당했고 검찰 수사도 받고 있다. 비박계도 지난 총선에서 대거 낙선했다. 그런데 총선·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진 한국당이 난파선 위에서 또다시 '저들만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 멘토였던 김종인 전 대표를 영입해 위기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당은 국민 시선을 되돌릴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있다. 외부에서 참신한 구원투수라도 영입할 준비가 돼 있는지 미지수다. 그저 유통기한 지난 친박·비박이 망해가는 당에서 서로 당권을 잡겠다고 다투고만 있다. 그런 구태와 꼴불견을 국민이 절대 오래 지켜봐 주지 않을 것이다.

[원선우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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