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문은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온전함을 염원하는 데서 나온 작명이었을 것이다. 저세상으로 떠나는 사람의 시신이 잠시 머무는 안치실을 중국인들은 태평간(太平間)으로 적는다.
이 태평문과 태평간은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한 곳에서 다른 한 곳으로 나아가는 통과의례(通過儀禮)를 상정하고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평안한 곳으로 나아가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옮겨가는 통과의 절차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제 안녕을 염원하는 점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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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문신(門神)을 받드는 습속이 발달했다. 집 문 옆에 작은 감실(龕室)을 만들어 출입을 관장하는 신을 모신다.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 평온과 행복을 바라는 사람은 문을 나서고 들 때 이 문신에게 향을 올리고 예를 바친다. 그 문신을 향한 염원은 보통 '태평출입(太平出入)'으로 적는다.
중국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다. "태평 시절의 개로 살지언정, 난세의 사람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寧爲太平狗, 不作亂世人)"는 말이다. 전란과 재난에 늘 시달려 온 중국인 특유의 비원(悲願)이자 안정을 향한 강박이다.
비장감까지 주는 위의 몇 사례로부터 우리는 '태평'을 향한 중국인의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를 느낄 수 있다. 지독한 애착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중국인의 문화적이면서 집단적인 콤플렉스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문화의 저변을 헤아리면 ‘비상구’가 왜 ‘태평문’으로 불렸는지 이해할 수 있다. 기복과 주술의 음울한 색채 때문에 명칭 자체는 사라졌지만, 그 전승은 끊이질 않는다. “안정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穩定壓倒一切)”고 한 덩샤오핑, ‘안정 유지(維穩)’를 통치의 핵심 근간으로 내세우는 현재의 중국 공산당 모두 이런 ‘태평 콤플렉스’의 충실한 계승자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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