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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독자 칼럼] 美 실리콘밸리 학교에선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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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연주 자유기고가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집 근처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아이들이 모래놀이 할 때 쓸 삽·그릇, 책과 연습장, 크레파스 등을 준비했다. 간식까지 챙기니 가방이 터질 지경이었다. 잠시 후 아이 둘을 데리고 공원에 나온 한 젊은 부부는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왔다. 엄마는 돗자리를 깔자마자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네 가족은 돗자리에 앉아 저마다의 포즈로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졌다.

대형 마트 카트에 타고 게임을 하거나 레스토랑 테이블에서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시청하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직 말도 못하는 갓난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면 스마트폰을 쥐여주며 달래는 엄마도 있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거리를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스마트폰 중독 초기 증상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은 심각한 수준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3~9세 아동 5명 중 1명이 스마트폰 의존도가 위험한 수준이라고 한다. 아주대병원 연구팀이 지난달 아이를 키우는 390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만 2~5세 유아의 12%가 스마트폰을 매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이나 TV에 일찍 노출되고 스크린을 보는 시간이 많은 아이일수록 언어 지체, 집중력 저하, 공격적 성향, 수면 문제 등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 한 전문가는 스마트폰을 강력한 맛을 내는 화학조미료에 비유하기도 했다. 어렸을 적부터 강한 자극에 노출된 아이들은 웬만한 자극에는 호기심이나 흥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대만은 만 2세 이하 영아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2013년부터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보여주거나 아이 혼자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게 하지 말자는 육아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발도로프학교는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학부모의 70%가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재직자로 최고의 IT 전문가들의 자녀가 다니는 곳이다. 스마트폰 같은 영상 기기들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고 뇌 활동을 저하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중독자의 뇌는 마약 중독자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상은 분당서울대병원 교수팀이 스마트폰 중독자의 뇌를 검사한 결과 안와전두피질과 미상핵 등의 활동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억력·사고력 등을 담당하는 안와전두피질에 이상이 생기면 합리적 판단이 어려워지고 충동적인 성향을 보이는데, 스마트폰 중독자의 뇌는 마약 중독자의 그것처럼 이 부분이 활성화됐다.

태어나면서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창의력과 사고력, 집중력을 기대할 수 없다. 아이를 현명하게 키우고 싶다면 부모가 나서야 한다. 아이에게 스마트폰 대신 다양한 놀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아이가 깨어 있는 시간에는 스마트폰을 서랍에 넣어놓자. 그리고 스마트폰이 생각날 때마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자. 동영상으로 아무리 좋은 자료를 보여주어도 부모와 이야기하는 것만큼 두뇌에 자극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부모와 대화를 하면서 자란다.

[이연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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