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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일사일언] 적당한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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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갑수 소설가


같은 시간이나 상황에서 동일한 행동을 15일 정도 반복하면 습관이 생긴다고 한다.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이후로 나는 의도적으로 몇 가지 습관을 만들었다.

주로 글쓰기와 건강에 도움되는 것들이다. 컴퓨터를 켜면 반드시 문서작성 프로그램부터 실행하는 습관, 소파에 앉으면 책을 읽는 습관, 자기 전에 그날 읽은 책을 정리하는 독서노트를 쓰는 습관 같은 것. 그리고 왼손으로 양치질하기, 아침에 일어나면 종합비타민 먹기, 저녁 식사 후 스쿼트 하기 같은 습관도 정착시켰다.

필요에 따라 습관은 계속 추가됐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액정을 깨 먹은 후에는 걸을 때 가방에 스마트폰을 넣는 습관을 만들었고, 컴퓨터 고장으로 3개월간 쓴 소설의 초고를 잃어버린 후에는 파일을 USB와 외장하드에 나눠 저장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어떤 습관을 만들었는지 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습관이 많아졌다. 일종의 과부하가 생겨서 습관들이 서로 혼재되기도 했다. 소파에 앉으면 스쿼트를 하고, 가방 안에 USB를 넣고, 왼손으로 양치질하다 물을 마시고, 컴퓨터를 켜면 반드시 종합비타민을 먹고…. 시행착오 끝에 내게는 열 개 남짓의 습관이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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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뜻하지 않게 새로운 습관이 생겼는데, 밤새 월드컵 중계를 보다가 아침에 잠든 지 일주일째다. 이제 일주일만 더 이렇게 보내면 습관으로 자리 잡아 나중에 일찍 잠드는 데 꽤나 고생할 것 같다. 사실 습관적인 행동이 늘 좋은 건 아니다. 나는 습관적으로 매일 책을 읽지만, 그렇게 읽었을 때 뭔가 얻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열망이 결여된 행위는 유의미하기 힘들다. 습관적일 때보다 내가 정말 원하는 순간에, 혹은 매료됐을 때 행동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습관과 열망이 서로를 배척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더 자주 하고 싶게 하려고 습관은 존재하는지 모른다.




[이갑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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