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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friday] 육중한 콘크리트 지붕을 쓴 하천, 그래서 더 서울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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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의 한 컷 공간] 전설 속 숲속 같은 '홍제천'

조선일보

제2의 자연처럼 내부순환로의 구조물이 덮고 있는 홍제천. 모래내라는 옛 이름처럼 바닥의 모래는 여전히 깨끗하고 곱다. / 황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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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성 밖 북서쪽 지역을 흐르는 홍제천의 발원지는 북한산이다. 홍제천이라는 이름은 인근 무악재 정상 근처에 있던 조선시대의 홍제원에서 왔다. 원(院)이란 공무 여행자를 위한 공공 숙식 시설이면서 동시에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을 돌보는 사회복지 기관이었다. 홍제원은 중국으로 오가는 길목에 있어 중국 사신이 도성으로 들어오기 전에 옷을 갈아입던 곳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홍제원 터 일대에 경성목장과 사격장이 있었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홍제천을 뭐라고 불렀을까. 아마도 홍제천의 또 다른 이름인 모래내가 답일지 모른다. 옛 이름 치고 무심한 것은 없다. 모래내란 하천 바닥에 고운 모래가 깔려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 모래는 북한산 일대의 바위가 부서지고 갈려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이 어지간히 첨벙거려도 바닥에서 뻘물이 올라오지 않으니 즐기기 좋은 하천이다. 모래내란 이름 안엔 이처럼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된 의미가 들어 있다. 어쩌면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름인 홍제천보다 자연 특징 때문에 생긴 이름인 모래내의 생명력이 더 길지도 모르겠다.

홍제천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도성 안팎의 대표적인 하천인 청계천이나 만초천과 비교된다. 세 하천의 공통점은 인간이 자연하천으로 그냥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청계천은 근대화 과정에서 그 위에 고가도로가 들어서면서 전 구간이 복개됐다가 이후 다시 전부를 걷어내는 극적인 변화 과정을 겪었다. 평소에는 건천이었지만 지금은 인공적으로 물을 퍼 올려 제법 수량이 상당해 보이는 하천이 됐다.

만초천은 한때 불을 밝히고 게를 잡는 것으로 유명했던 하천이었으나, 지금은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복개됐다. 인근 지역에 냉천동, 평동, 교남동, 교북동 등 하천과 관련된 이름으로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반환이 예정된 용산 미군기지 안에 만초천이 흐른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만초천의 지류일 뿐이다. 안산 인근 무악재에서 발원한 만초천의 본류는 어두운 땅속을 흐르다가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빠져나간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서 그 괴물이 사는 곳이 바로 만초천의 하류다.

홍제천의 역사 또한 기구하다. 일부 구간이었으나 복개 과정을 겪은 것은 나머지 두 하천과 같다. 1990년대 중·후반 내부순환로가 건설되면서 성산대교 북단에서 홍은교까지 6.5㎞ 구간이 홍제천 바로 위를 지나갔다. 홍제천 전체 길이가 13㎞를 조금 넘으니 절반이 내부순환로와 겹치는 셈이다. 그 결과, 홍제천 한복판에 고가도로 교각이 줄지어 들어섰다. 홍제천도 평소에는 건천이었으나 대대적인 토목 사업 끝에 2008년 이후 청계천처럼 인공으로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 청계천처럼 그 위의 구조물을 걷어낼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사진 속의 홍제천은 마치 전설 속의 숲속 같은 모습이다. 콘크리트 교각은 아름드리나무같이 육중하고, 그 위의 고가도로는 울창한 수풀처럼 하늘을 가리고 있다. 가히 제2의 자연이라 할 만하다. 모래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바닥의 모래는 여전히 깨끗하고 곱다. 맑은 물에 뛰어들어가 노는 아이들은 그림 속 요정 같다. 지붕 있는 하천, 홍제천의 풍광은 이렇게 우리의 상상을 가볍게 초월한다. 그런 점에서 참으로 서울적이다.

[황두진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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