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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friday] 남성 패션쇼에 길거리 캐스팅 할머니 넷… 런웨이 경계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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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 패션쇼]

패션계에 성별이 유효한 걸까. 경계를 없애는 게 패션이라지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최근 런던·밀라노에서 열린 2019 봄·여름 남성 패션 위크는 남녀노소, 모델과 비모델의 장벽을 깨는 시도의 장이었다. 남성 쇼가 분명한데 무대엔 여자 모델이 대거 올랐다. 60년 만에 맞는 여고 동창회 파티에 온 듯 백발을 날리며 패션쇼 조명을 온몸으로 느끼는 할머니 모델의 인간적인 몸매는 보는 이의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했다. '남성 쇼'라면 그러하듯 남자들의 슈트, 팬츠, 셔츠 등 스타일의 변주에만 익숙했던 우리의 고정관념에 통쾌한 어퍼컷을 날린 셈이다.

이들은 말하고 있다. 패션은 즐기는 것이라고. 고답적인 용어를 남발하며 패션을 현실과 동떨어진 이해불가 놀음으로 만드는 건 어쩌면 패션에 진정 무지한 일일지도 모른다.

◇남성 쇼 장악한 '옷 잘 입는 예쁜 누나'

나이, 몸매, 성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대에 올린 돌체앤가바나의 2019 봄 남성 쇼는 독특한 커플룩으로 패션계의 찬사를 단번에 이끌어냈다. 이미 각종 패션 화보를 통해 이탈리아 정서가 듬뿍 담긴 가족을 내세웠던 돌체앤가바나였지만 그간 화려한 꽃무늬, 호피무늬, 각종 유색 보석 등을 재반복하며 자기 복제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사토리얼(재단이 잘된 슈트) 의상과 밀레니얼 세대가 서로 손을 내밀 것 같은 길거리 감성 의상을 적절히 배합했다. 동성 커플, 쌍둥이, 연상연하 커플 등 지구상에 등장하는 모든 종류의 커플룩을 무대로 올렸다. 특히 길거리에서 즉석 캐스팅한 4명의 할머니 모델은 신의 한 수. 스포츠풍 점퍼와 일명 '트랙 슈트'라 불리는 운동복은 그들을 1960년대 고고장에서 바로 '모셔온' 듯 보이게 했다.

올해로 54세인 '만인의 여신' 모니카 벨루치 역시 돌체앤가바나 무대에 올라 시선을 장악했다. 우아한 검은 턱시도 정장 차림의 그녀는 '정반대의 것은 서로에게 끌린다'는 돌체앤가바나의 이번 쇼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피날레 무대를 장식한 마흔여덟의 수퍼모델 나오미 캠벨 역시 핀스트라이프 슈트로 강렬한 아름다움을 완성했다.

역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인 베르사체의 2019 봄·여름 패션쇼 무대는 최근 가장 각광받는 여성 모델인 벨라 하디드와 이만 하만, 켄달 제너가 무대를 장식했다. 남성 쇼 무대이긴 했지만 일종의 미니 여성복 발표회인 '캡슐컬렉션'이다. 125년 역사의 영국 브랜드 닥스도 우아한 여성 의상을 입은 모델을 무대에 올렸고, 아이스버그 역시 경쾌한 여성복으로 주목받았다.

임신한 남성의 시대가 올까?

중국 출신 패션 디자이너 샌더 저우가 2019 봄·여름 런던 남성복 패션 위크에서 선보인 '남성룩' 역시 고정관념에 대한 거룩한 파괴를 시도했다. 임신한 배를 드러낸 남성 모델을 무대에 대거 올린 것이다. 지난해 미국 듀오 디자이너 브랜드 에카우스 라타와 패션 브랜드 오프닝 세러모니, 화장품 브랜드 글로시에 등이 여성 패션쇼와 광고에 임신한 남성의 이미지를 올린 적 있지만 이제 남성 쇼 무대까지 본격적으로 확대됐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지만 모델들은 진짜 임신한 것처럼 배를 감쌌다. 한 모델의 티셔츠엔 '뉴 월드 베이비(New World Baby)'란 글자도 적혔다. 초현실적인 세계를 보여준다는 것이 이번 쇼의 주제.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와 미국 폭스뉴스 등은 "임신한 남자가 런던 쇼의 시선을 모두 빼앗았다"며 중국 디자이너를 주목했고, 팬들은 "언젠간 닥칠지도 모를 미래"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래주의가 스타일로 반영돼 우주복 같은 미래 인류의 의상을 보여준 적은 있지만 아예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직접적인 목소리를 낸 건 최근 일이다. 지난해 구찌가 미국 페미니스트 운동가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에 영감을 받아 모델에게 자신의 얼굴을 똑 닮은 머리통을 들게 해 충격파를 준 이후 최근 각종 쇼 무대는 '새로운 인류'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펼치려는 듯하다.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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