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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보이 茶 테크, 부르는게 값…골동 보이차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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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75년에 생산된 `7542` 제품.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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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안국동에 있는 한 보이차 전문점은 지난달 초 1920년대 생산된 '복원창' 한 편(片)을 2억원 중반대에 홍콩 사람에게 팔았다. 복원창은 1990년 이전에 생산된 일명 '골동(古董) 보이차' 중 황제로 불리는 최고 제품이다. '한 편'이란 둥글거나 직사각형 모양으로 찻잎을 하나로 압축시켜놓은 것이다. 복원창이 국내에 수입된 1990년대 초만 해도 한 편 가격은 30만원대였지만 얼마 전 홍콩에서 열린 경매에서 3억원 넘게 거래됐다. 5~6월 한 달 새 5000만원가량이 또 오른 것이다.

최근 건강기능 차(茶)로 주목받고 있는 보이차가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30여 년 전 생산돼 오랜 기간 자연발효 과정을 겪은 골동 보이차만 해당된다. 골동 보이차는 발효를 통해 영양이 더해지고 맛과 향이 깊어지면서 가치가 높아진다. 1950년대 생산된 골동 보이차 중 하나인 '홍인'은 현재 매매가격이 1억원을 넘는다. 비교적 가까운 1980년대 나온 '7542' 제품은 1990년대 수입 당시 편당 3만원 하던 것이 지금은 400만원에 거래된다.

골동 보이차를 취급하는 명가원의 김경우 원장은 "골동 보이차는 숙성기간이 최소 30년 넘은 것이라 공급이 부족해 가격은 계속 올라간다"면서 "물건을 내놓으면 일주일 내에 매매가 될 정도로 환금성이 높아 고가 그림처럼 소장하려는 사람이 많다"고 밝혔다. 그는 "2000년대 들어 중국·홍콩·대만 부자들까지 매입 붐이 일면서 골동 보이차는 글로벌 매매가 더해져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면서 "희소한 만큼 구하기가 힘들어 전생에 복을 가진 자만 접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골동 보이차 거래를 전문적으로 하는 매장은 3~4곳에 불과하다. 이들 업체는 골동 보이차를 소장하고 있는 고객 명단을 확보해 두고 중국 홍콩 등에서 문의가 있으면 연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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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 명가원에 골동 보이차들이 진열돼 있다. [이충우 기자]


익명의 보이차 전문가는 "골동 보이차 세계는 아는 사람들만 즐기는 소수 문화로 전체 보이차 시장의 5%도 안 된다"면서 "이들에게 일반 보이차는 커피로 치면 믹스커피에 불과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오래된 보이차라고 해서 무조건 비싼 것은 아니다. 김 원장은 "생산된 차창(차공장)이 알려져 있고 이후 제대로 된 발효 과정을 거쳐 풍미를 인정받은 제품만 고가에 거래될 수 있다"면서 "오래 놔둔다고 부가가치가 커지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보이차라는 이름은 중국 윈난성 푸얼시에서 주로 재배된 데서 나왔다. 청나라 말기 서태후는 보이차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서태후 시중을 들던 궁녀들 얘기를 담은 '궁녀담왕록'에는 "서태후가 방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 먼저 보이차부터 마셨다"고 쓰여 있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고급 골동 보이차를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9세기 청나라 시절부터 보이차를 본격 재배한 중국에서는 처음부터 발효를 거친 골동 보이차를 마신 것이 아니었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갓 따온 어린 찻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내 마셨다. 당시에는 발효라는 개념이 없어 오래 묵힐수록 독특한 품질이 완성된다는 것을 몰랐다. 발효 과정을 거쳐 기품 있는 골동 보이차가 탄생한 것은 생산지인 중국 본토가 아닌 홍콩에서였다.

'골동 보이차의 이해'(김경우 저)라는 책에 따르면 1856년 윈난성에서 반란이 일어나 서쪽 티베트 지역으로 보이차 수출길이 막히자 동남쪽인 홍콩·광둥·동남아시아로 보이차 판로가 새로 개척됐다. 특히 아편전쟁 이후 영국에 할양된 홍콩에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딤섬과 함께 보이차 소비가 증가했고, 1930년대 이후 발효된 보이차 맛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중국 본토에서 구입한 찻잎이 홍콩 내 창고에서 오랜 세월 저장된 채 발효 과정을 거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맛과 향을 내게 된 것이다.

김 원장은 "현존하는 골동 보이차는 중국이 아니라 모두 홍콩에 있는 창고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골동 보이차는 생산 시기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된다. 가장 오래된 '호급보이차'는 중국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기 전인 1900~1950년대 개인 찻집 같은 데서 생산됐다. 이 중 일부가 홍콩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남아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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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급보이차 최고봉으로는 '복원창'을 꼽는다. 1920~1930년대 생산돼 장기간 발효를 거치면서 목 넘김이 부드럽고 마시면 뜨거운 열감이 일품이라는 평가다. 또 다른 호급보이차인 '송빙호' 역시 2015년 거래 가격이 1억원을 넘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호급보이차에 이어 나온 '인급보이차'는 중국이 공산화된 뒤 국가가 찻잎 관리와 차 생산을 통제하면서 나왔다. 당시 보이차 생산은 4개 국영 차창에서 이뤄졌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최고 보이차로는 1950년대 맹해차창에서 나온 '홍인'을 꼽는다. 종이 포장이 깨끗하고 편당 무게가 320g 이상인 홍인 A급은 1억원을 호가한다.

골동 보이차 가운데 상대적으로 늦은 1970~1990년대 출시된 것은 '숫자급 보이차'로 불린다. 1974년부터는 모든 보이차 이름을 숫자로 표시해 7452, 7532, 7542, 7572 등 이름을 달고 있다. 앞의 두 숫자는 생산된 연도를 뜻하고, 세 번째 숫자는 찻잎을 병합한 비율, 네 번째 숫자는 생산공장 고유 번호다.

일각에서는 골동 보이차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다고 지적한다. 비싼 값을 치를 만큼 과학적인 건강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가운데 높은 희소성만 보고 마치 수집하듯 해서 가격만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중국식 체면 문화가 골동 보이차 가격을 폭등시키고 있다고 본다. 중국에서는 지인들과 차를 마시면서 본인 지위를 과시하는 문화가 강한데 골동 보이차가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보이차 업계 관계자는 "골동 보이차 가격이 크게 오르다 보니 중국에서는 과거 리어카에서 팔던 보이차 소유자가 이젠 벤츠 주인이 돼 트렁크에 싣고 다닌다"면서 "1990년대 초반 중국산은 '가짜'라는 인식 때문에 우리나라가 많은 골동 보이차를 소장할 기회를 놓친 것이 매우 아쉽다"고 털어놨다.

[김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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