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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목멱칼럼]소통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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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이번 지방선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잘못된 선거 문화가 퇴출되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흔히 언론에서 지역주의라고 부르는, 실제로는 비합리적인 반 계층적 투표가 점차 사라지고 불리한 후보가 흔히 선택하는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거의 소용없게 되었음도 보여줬다. 무리한 정치 공세는 오히려 개별 후보의 인물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도 있음을 입증한 선거였으며,
이데일리

일 방향 선동에 기초한 유세 문화의 후진성을 다시 확인한 선거였다. 그야말로 정치판에 거대한 변화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는 우선 호남의 비례대표 선거였다. 호남에서 여당은 늘 민주당이었다. 하지만 호남의 유권자들은 누구보다도 전략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정권을 견제할 야당에게 몰표를 주면서도,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상황은 개선하려고 했다. 민주당이 지방 권력의 견제가 불가능한 상황을 악용하면서 유권자들과 소통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4년 7.30 재보선 때부터 행동에 나선 호남 유권자들은 새누리당 당선자를 내며 경고를 하더니, 2016년 총선 때에는 국민의당을 선택, 호남의 제1야당을 만들어주면서 권력을 견제하게 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호남 유권자들을 배반하고 국정농단의 또 다른 주체인 바른정당과 합당을 선택하자 이번 선거에서는 아예 정의당을 제1야당으로 만드는 선택을 한다. 이번 광역 비례선거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지지기반을 호남에 두고 있는 민주평화당보다도 정의당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 광주(12.77%)와 전북(12.88%)에서 두 자릿수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하며 2위를 차지한 정의당은 이 두 곳에서는 제1야당 교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도 했다. 정의당의 선전은 전국에서 9% 이상 고른 정당지지를 확보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결코 우연히 얻은 결과가 아니었다. 꾸준히 유권자들 곁에서 소통하면서 키워낸 풀뿌리 정치와 현실적인 지역 공약을, 이번 선거의 다수 유권자들이 선택함으로서 개혁에 머뭇대는 정당들에게 경고를 보낸 것이었다.

변화를 읽어낼 두 번째 사례는 안산에서 일어났다. 이번 선거에서 안산은 거의 유일하게 지역 이슈가 판을 흔든 곳이었다. 북미정상회담이 블랙홀처럼 지역 이슈를 빨아들일 때에도 안산 화랑유원지의 추모공원 찬반 논쟁은 뜨거웠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후보들이 일제히 납골당 백지화를 공약으로 전면에 내세우며 화랑유원지의 미개발지역에 들어설 생명안전공원 내 봉안시설을 혐오시설로 규정하고 정치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 지방 선거를 보면, 화장시설이나 봉안시설, 특수학교 등의 시설들이 들어서면 집값 떨어진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공약화해서 이슈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 기획 부동산업자들이나 토건 세력들이 퍼뜨리는 루머를 그와 결탁한 정치인들이 쟁점화해서 집에 대한 소유욕이 남다른 한국인의 심리를 자극하는 것인데, 이번 안산의 사례는 세월호와 연관된 시설이라는 점에서 보수세력들의 입장에서는 정치 공세를 벌이기에도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화랑유원지를 시민들 품으로 돌려주겠다며 돔구장 건설을 공약하는 시장 후보가 있었다는 것은, 우리 지역 유권자들의 정치적 식견을 거의 모독한 사례였지만, 아직도 이런 공약이 통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정치권에 있다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했다.

결과는 분노한 안산 시민의 응징이었다. 여론조사 안 믿는다며 최소한의 소통 채널조차 닫던 자유한국당 후보는 30%에도 못 미치는 29.9%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돔구장 건설을 호언장담하며 안산을 세월호 도시로 만들려는 세력을 응징해야 한다고 했던 후보는 선거비용 보전 기준인 15%조차도 넘기지 못했다. 광역 도의원 8자리는 모두 민주당이 차지했고, 시의원 8개 선거구 중 아예 보수야당 당선자가 없는 곳이 두 군데나 나온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당선이 유력했던 기호 ‘2-가’의 현직 시의원이 ‘1-나’ 후보에 밀려날 만큼 시민들은 매섭게 채찍질을 했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가사를 아기상어 곡조에 붙인 선거 로고송에서 그들의 착각을 확인했다. 중소기업의 소중한 콘텐츠를 보호해 달라는 호소, 아이들의 동요는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를 모두 무시하고, 협박에 가까운 가사를 붙여 기어코 스피커로 틀어댄 그들. 나라는 국민의 소유고, 운영을 위탁하는 일이 선거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유권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퍼부은 그 노래는, 그들이 지금까지 소통하지 않았던 것처럼 앞으로도 여전히 소통할 생각이 없다고 노래하는 것으로, 사실상 조롱이었다. 로고송이라는 낡은 선거 문화는 이렇게 변화된 유권자들에게는 해고의 결심을 촉구하는 배경음악(BGM)일 뿐이었다.

선거는 끝났다. 하지만 변화는 오히려 거세질 것이다. 달라질 생각이 없다면 퇴출될 것이고,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알고 싶다면 귀부터 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소통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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