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이탈리아 시골마을 ‘난민 공존’ 실험
평균연령 65살인 시골마을
유황공장 문닫자 젊은이들 도시로
1000명이던 인구는 200명으로 줄어
젊은 난민 노동력 활용
버려진 포도밭 다시 일구며
조합 만들어 상품 생산·판매도
난민-고령화 동시 해결 ‘윈윈’
“이 사업은 우리 미래를 위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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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루로이르피노는 이탈리아 서남지역 항구 나폴리에서 동쪽으로 70㎞ 떨어진 해발 500m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주민 수 200여명. 어느 집에 접시와 포크가 몇개인지도 훤히 알 수 있을 만한 토박이 공동체다.
“우리 가족은 시크교도예요. 탈레반이 집요하게 개종을 강요해 숨어 지냈어요. 그날은 아내, 큰아들과 집을 비운 상태였어요. 탈레반이 집에 들이닥쳐 부모님과 다섯살 된 작은아들을 살해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집으로 가보지도 못하고 카불로 도망쳤어요. 장례식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브로커와 함께 위조 여권을 들고 영국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를 세번 갈아탄 끝에 도착한 곳은 몹시 추웠다. 그곳에서 4시간을 걷고, 차를 1시간 타고나니 핀란드 수도 헬싱키였다. 브로커는 내뺐다. 버스를 타고 가다 독일 경찰에 붙잡혀 난민 캠프로 옮겨진 뒤, 추방 명령을 받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이탈리아에 닿았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사라지는 여정이었다.
싱은 이 대목에서 얘기를 중단하더니 집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평화원정대에 건넸다. 연극의 막이 바뀌는 듯한 연출 효과랄까. 잠시 숨을 고른 싱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프가니스탄과 가나 출신 난민들이 2일 오후(현지시각)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페트루로이르피노에서 지역주민, 난민을 지역에 받아들이는 ‘웰컴’ 프로젝트의 활동가들과 함께 광장 계단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페트루로이르피노/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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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루로이르피노는 카리타스가 운영하는 난민 프로젝트인 ‘웰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마을이다. 페트루로이르피노 시장인 주세페 롬바르디는 “말 그대로 웰컴”이라고 했다. 평화원정대가 아니라 난민들을 향해 하는 말이었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포퓰리즘과 극우주의가 강화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기에, 시골 마을 시장의 말은 더욱 낯설게 들렸다.
“전수조사를 안 해봤지만, 모든 주민이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에 찬성하지는 않을 테지요. 그러나 우리로서는 윈윈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주민들에게 다가가 설득을 했고, 주민들의 마음이 열렸습니다.”
페트루로이르피노는 1970년대까지 주민 수가 1000명이 넘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유황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포도밭에서 일하던 젊은이들도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현재 이 마을 주민 200여명의 평균 나이는 65살. 2008년부터 2013년 사이에는 아기 울음소리가 끊기기도 했다. 롬바르디 시장은 “난민을 가족 단위로 받아들이면 이 지역의 어린이와 함께 클 수 있는 아이들이 태어날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카리타스는 난민 문제와 함께 이탈리아의 고령화 문제를 연계해 ‘웰컴’ 프로젝트를 세우고 14개 마을과 함께 실행하고 있다. 정부에서 난민들에게 주는 하루 35유로의 지원금을 가지고 난민이 지역 사회에 녹아들 수 있도록 이탈리아어 수업을 하고, 지역의 문화를 가르친다. 난민 인정 자격을 따도록 행정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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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된 난민 “지금은 행복하지만…” 정국혼란 불안도
탈레반에 부모·큰아들 잃은 30대
브로커와 위조여권 들고 고향 떠나
영국·헬싱키·오스트리아 거쳐
1년만에 이탈리아 정착
‘이탈리아 어떻게 바뀔지 걱정…’
“이곳 난민은 범죄 저지른 적 없어
미디어가 ‘난민 공포’ 만들어내”
작은 마을 어떤 이는
“전쟁 겪어봐서 배고픔이 뭔지 알아
우리가 아니면
이들을 누가 받아들이겠나”
지난 2016년 9월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페트루로이르피노의 성당에서 한 난민 아기가 세례를 받고 있다. 페트루로이르피노/피에트라 앙골라레(모퉁이 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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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루로이르피노는 난민 20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싱의 가족, 두달 전에 이탈리아에 도착한 가나 출신 프란시스 가족, 나이지리아에서 온 가족 등 모두 11명이 머물고 있다. 프란시스의 아내는 바다를 건너기 전 리비아에서 성폭행을 당했고, 나이지리아 청년은 1ℓ짜리 물병을 들고 두달 동안 사막을 걸어 리비아로 와서 바다를 건넜다고 했다. 그 청년은 자신의 소변을 다시 마시며 목마름을 견뎌냈다. 이 마을은 시리아 난민 9명이 더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포도를 재배하던 작은 마을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을 광장의 바 앞에는 젊은 난민들과 지역 젊은이가 함께 앉아 있었다. 2주 전에는 많은 주민들이 성당에 모인 가운데, 나이지리아에서 온 난민 아기의 세례식이 열렸다. 시장은 이 아기의 대부가 됐다. 성당 안에서는 피부색도, 국적도, 신분의 지위도 중요하지 않았다.
난민에게 지원되는 하루 35유로의 돈은 집세와 먹거리, 교육비 등 현지 경제를 순환시켰다. 빈집에 사람도 들었다. 롬바르디 시장은 “주민들의 수입이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경제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게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웰컴’ 프로젝트는 질적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난민과 지역 공동체가 ‘피에트라 앙골라레’라는 이름의 조합을 만들어 상품을 생산해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난민 등 소외계층을 회원으로 받아들여 노동력을 활용하고, 일손이 없어 놀고 있는 지역 주민의 땅도 일구자는 계획이다.
2일 오후(현지시각)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베네벤토 카리타스 조합 판매처에 조합에서 생산한 지역특산품이 전시되어 있다. 베네벤토 카리타스 조합에서는 베네벤토 인근 14개 지역의 난민들과 소외계층들을 위한 조합을 만들어 생산된 지역특산물을 팔고 있다. 베네벤토/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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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루로이르피노에서 자동차로 20분가량 떨어진 베네벤토시에는 이미 피에트라 앙골라레의 상품을 파는 상점도 있었다. 1일 오후 이곳을 찾아, 이 조합의 책임자 안젤로 모레지를 만났다. 모레지는 “거대 기업이 버려진 땅을 사면 유전자변형 작물을 기를 것이고, 일하는 사람들 역시 정당한 대가를 받기 힘들 것”이라며 “피에트라 앙골라레의 목표는 이 지역의 경제적 발전”이라고 설명했다.
상점 안에는 파스타와 올리브오일 등 먹거리로 가득했다. 모레지는 지난해부터 상품 생산에 들어간 2000ℓ의 올리브오일을 곧 판매할 예정이며 내년에는 와인도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이 지역은 이탈리아의 와인 산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안젤로 차바렐라는 “조합을 위해 하루 26시간을 일한다”며 웃었다. 그는 “이 조합이 잘돼 청년들이 이탈리아 북부나 국외로 나가지 않고 지역사회에 남아 활력이 돌았으면 좋겠다”며 “이 사업은 자본주의나 기업이 아닌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했다. 안젤로 모레지는 난민과 지역주민이 힘을 합쳐 내놓은 이 음식들이 “평화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런 노력이 이탈리아 전역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낯선 난민이 동네에 들어온 것을 무척 경계하는 이탈리아인들도 많다. 싱도 자신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내는 노인을 만났다고 했다. 페트루로이르피노의 옆 마을에서는 100명의 난민이 들어와 지역이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페트루로이르피노의 공존 실험에 대한 기대보다 난민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 총선에서 반난민, 반유럽연합을 내세운 극우정당 ‘동맹’이 약진했다. 반체제정당 ‘오성운동’과 ‘동맹’은 지난 1일 연립정부를 수립했다.
가나 출신 난민 프란시스는 “지금은 행복하지만 이탈리아가 어떻게 바뀔지 걱정이 크다”고 했다. 롬바르디 시장은 “난민이 이곳에 함께 살면서 범죄를 저지른 적은 한번도 없다. 난민에 대한 공포는 정치적 목적으로 텔레비전과 미디어가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페트루로이르피노를 떠나기 직전 롬바르디 시장은 이 마을의 한 노인이 했다는 말을 들려줬다.
“우리도 전쟁을 겪어봐서 배고픔이 뭔지 잘 안다. 배고픔에서 탈출하려는 이들을 우리가 아니면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페트루로이르피노/이완 기자 wani@hani.co.kr
나이지리아에서 온 한 난민이 2일 오후(현지시각) 이탈리아 페트루로이르피노의 거리를 걷고 있다. 페트루로이르피노는 주민 수 200여명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페트루로이르피노/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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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평화
한겨레 평화원정대가 만난 자원봉사자 안젤로 차바렐라가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 장의 평화’를 써서 보여주고 있다. 자바렐라는 이탈리아어로 형제애를 뜻하는 ‘프라텔란자’(Fratellanza)를 평화의 의미로 풀었다. 베네벤토/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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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평화원정대가 만난 난민협동조합장 안젤로 모레지가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 장의 평화’를 써서 보여주고 있다. 모레지는 이탈리아어로 노력을 뜻하는 ‘임페그노’(Impegno)를 평화의 의미로 풀었다. 베네벤토/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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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평화원정대가 만난 백화점 간부 마시모 발렌티니가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 장의 평화’를 써서 보여주고 있다. 발렌티니는 이탈리아어로 사랑을 뜻하는 ‘아마레’(Amare)를 평화의 의미로 풀었다. 로마/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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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평화원정대가 만난 튀니지 난민 카이스 코아에르가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 장의 평화’를 써서 보여주고 있다. 코아에르는 아랍어로 존경을 뜻하는 ‘아이트람’(??????)을 평화의 의미로 풀었다. 페트루로이르피노/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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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평화원정대가 만난 페트루로이르피노 시장 주세페 롬바르디가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 장의 평화’를 써서 보여주고 있다. 롬바르디는 이탈리아어로 만남을 뜻하는 ‘인콘트로’(Incontro)를 평화의 의미로 풀었다. 페트루로이르피노/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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