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서울 동대문구 역사문제연구소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 다시 읽기’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이 세미나는 앞서 4월부터 시작됐으며, 이날 마지막 세미나는 장장 4시간 동안 열띠게 진행됐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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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창간된 1988년 이래 30년간 한국 사회는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역동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삶의 질과 인권 관점에서 진전과 퇴행이 엇갈리기도 했지만 중대한 고비마다 집단지성과 시민적 연대가 빛났다. 출판으로 가시화되는 학술·담론 분야도 시대와 호흡하며 깊이와 넓이를 더해왔다.
식민사관·냉전 인식 뿌리째 흔들어
공산주의권 붕괴 이후 나침반 구실
푸코·데리다·들뢰즈·라캉 이론 수입
민족문학·분단체제 등 자생담론도
프로이트·니체·마르크스 등 전집 붐
첫 10년은 군부 독재에 가로막혀 있던 ‘사회변혁’ 담론의 봇물이 터진 시기였다. 특히 1989년은 지성사 관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시리즈는 분단 체제에서 식민사관과 반북·냉전 교육에 찌든 국민들의 현대사 인식을 뿌리째 뒤흔든 인식론적 전환이자 충격이었다. <자본론>의 첫 우리말 완역 발간은 뒤늦게나마 낡은 이념의 잣대가 깨지고 학문과 사상의 영역에서 숨통이 트이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한국사회구성체 논쟁>(1989, 박현채·조희연 등)은 “한국 사회의 성격을 진단해 변혁의 실천적 지침을 얻으려 한 것으로, 80년대 진보학계와 운동권의 지적 자화상”(백영서 연세대 교수)으로 평가된다. 이진경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1989)도 같은 맥락에 있는 책이다. 이런 담론들은 형식적 민주주의 쟁취, 공산주의권 붕괴 등과 맞물려 현실을 읽고 미래를 기획하는 도구가 됐다.
1990년대 들어서는 푸코, 데리다, 들뢰즈, 라캉 같은 후기구조주의 또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이론이 대거 수입돼 인식의 지평을 크게 넓히며 학문과 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90년대 초반에 한꺼번에 출간된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 1~3권(1990), <지식의 고고학>(1992), <감시와 처벌>(1994) 등은 합리성이 지배하는 근대사회에서 권력이 일상의 삶을 미시적으로 규율하고 억압하는 방식과 그에 맞선 저항에 대한 통찰로 전문 연구자들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반향을 낳았다. 푸코 열기는 이후로도 <광기의 역사>(2003), <말과 사물>(2012·전면개역판) 같은 저서 번역과 다양한 해설서 출간으로 이어졌으며, 지난 2월에는 말년의 미완성 원고들이 <성의 역사> 4권 ‘육체의 고백’이란 이름으로 빛을 봤다.
일부에선, 서구 근대의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 회의에서 출발한 ‘탈근대’ 담론을 제대로 된 ‘근대’도 경험하지 못한 한국 사회에 무분별하게 적용하는 것에 관한 비판도 나왔다. 그럼에도 다양한 담론의 백가쟁명은 국내 학계에 지적 자극을 주었다. 한국 사회 현실에 기반해 대안적 미래를 모색하는 자생담론들도 풍부해졌다. 백낙청의 민족문학론과 분단체제론,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 김상봉의 <학벌 사회-사회적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2004) 등이 사례다. 외국의 굵직한 사상가들의 전집류가 번역돼 나온 것도 최근 30년 새 국내 학문 토양의 발전을 보여준다. 프로이트(1993, 열린책들), 니체(1994, 책세상), 스피노자(2008, 서광사), 카를 마르크스와 엥겔스 저작선집(2014, 박종철출판사) 등이 대표적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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