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분쟁 시절 균형외교는 북한의 생존전략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중국과 소련 사이를 오가며 막대한 원조와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소련이 6·25전쟁 차입금을 탕감하고 화력발전소와 정유공장을 지어주면, 중국도 뒤질세라 거액의 차관을 제공하고 고무타이어공장을 건설해주는 식이었다. 공산권 패권과 이념을 놓고 갈등하던 중국과 소련은 우군확보를 위해 빚을 내면서까지 북한 지원에 매달렸다. “북한이 외교 하나는 잘한다”는 외교 속설이 나올 정도였다. ‘줄타기외교’란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탁월한 외교술이 북한의 생존과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북한은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공산권이 붕괴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서방과 수교하면서 균형외교를 펼 상대가 사라진 것이다. 1994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집권 기간 내내 그럴 기회를 아예 갖지 못했다. 이때 북한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비롯된 피해를 떠안아야 했다. 서방의 제재가 집중되고 공산권으로부터는 지원이 끊기는 이중의 곤경을 피할 수 없었다. 이는 국력 쇠퇴와 체제 위협의 가중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핵개발도 이런 상황에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다.
김정은이 북·미 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 선보인 전략은 ‘신균형외교’라 할 만하다. 중국과 소련의 경쟁 구도가 사라진 상황에서 핵폐기를 수단으로 균형외교를 할 수 있는 국제적 환경을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대를 건너뛰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외교재능 DNA를 물려받았는지 모른다. 북한에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60년간 균형외교를 이끌어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란 외교자산이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김영남은 1928년생으로 올해 만 90세의 고령이지만 김정은의 외교 가정교사로 부족함이 없을 터이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 김여정과 방남한 그는 꼿꼿한 자세와 조리 있는 말솜씨로 녹록지 않은 존재감을 알렸다. 북한이 40여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가장 잘했던 것을 다시 시작하게 된 셈이다.
사실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은 어느 한 국가를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등거리외교가 필수다. 특히 북한으로서는 대륙세력과 해양 세력,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접점에 자리한 지정학적 위치 탓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본디 반도국가는 지정적학 위치에 따른 득과 실의 잠재적 가치를 갖지만, 남북은 전략 요충지나 교두보로서의 이익보다는 오히려 완충역할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물론 남북이 미국과 중국 및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 중 상당 몫을 반목과 갈등 비용으로 도로 지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6·25나 각종 군사 충돌로 인한 인적 피해를 고려하면 결코 제대로 실리를 챙겼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김정은의 신균형외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비단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기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70년간 남북한 7000만 민족을 옥죄어온 적대와 군사적 대결을 제거하고 한반도 평화가 조성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 중국이 아닌, 중국과 미국을 상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견제와 균형을 주조로 하는 균형외교의 특성을 고려해보면 북한은 중국의 완충국가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 친미국가, 미국의 우방국이 될 수 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제사회와 조화롭게 지내는 정상국가 북한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북한이 어느 길을 선택하든 한반도 평화, 남북 화해 및 공동 번영을 기반으로 할 것이라는 믿음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반도 정세의 근본틀이 깨지는 과정에서 고통과 혼란이 있겠지만 그것은 즐거운 혼란일 터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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