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의 재발견이었다. 2018년 4월27일. 그날의 일은 모두 녹화되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그 맥락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 지난 후에라야 객관적 거리도 확보되고 그 전모가 눈으로 들어온다. 한차례 흥분이 지나고 돌이켜 보면 인상적인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그것은 처음 만나 악수한 뒤 잠깐 북측으로 월경(越境)하는 사진이었다. 이제껏 적대적이었던 두 정상이 손을 잡은 채 금단의 선을 넘는 뒷모습.
사람의 진면목은 뒷모습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다. 이 광명한 세상에서 유일한 맹점이 있다면 그건 본인(本人)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지(奧地)인 뒷모습. 그것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법이다. 뒷모습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책이 있다.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뒷모습>이다. 뒷모습만을 찍은 사진도 좋지만 밀도 높은 글이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사십쯤에 <뒷모습>을 접했다. 오십이면 그 경지에 오르기를 소망했건만 육십을 목전에 두고도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다만 시골에서 벌초할 때, 풀을 베고 난 뒤 모두에게 부탁해서 뒤로 돌아선 모습을 찍는다. 어쩌면 무덤은 한 인생의 총체적인 뒷모습이기도 하겠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형제들의 뒷모습. 거기에는 홀가분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쓸쓸한 표정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돌아서 있는 형님들은 아버지의 생전 모습과 얼마나 닮았던지!
지난주에는 평창의 마을 근처를 돌아다녔다. 남북회담의 물꼬를 터준 올림픽의 열기는 옛일이 되었고 봄맞이 준비로 바쁜 어느 무덤가에 뛰어들었다. 살아서 흩어졌던 피붙이들이 헤어지지 말자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 아래 여러 봉분 사이로 야생화가 퍽 다양했다. 지하로 가는 통로인 듯 구슬붕이, 무덤 봉우리엔 노란 솜방망이, 할미꽃, 쥐오줌풀 등등. 그중에서도 나를 단박에 바닥으로 쓰러지게 만든 건, 아주아주 희귀한 대성쓴풀이었다. 손가락만 한 키이지만 네 장의 야무진 꽃잎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담고 있는 대성쓴풀. 굳이 입에 넣지 않아도 이름에서부터 쓴맛이 왕창 풍겨 나오는 대성쓴풀. 멸종위기 2급, 용담과의 여러해살이풀. (그림ⓒ이해복)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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