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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24시간 깨있는 글로벌기업…`52시간`은 일하다말고 퇴근하란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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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로시간 단축 후폭풍 ④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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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아마존 소니 등 글로벌 고객들과 일해야 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현재의 주 52시간 근무제는 글로벌 경쟁 환경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제도라고 입을 모은다. 생산라인은 주 52시간 적용이 가능하고, 이미 적용하고 있지만 문제는 연구개발(R&D)과 관련된 조직과 인력이다. D램 낸드플래시 등 반도체는 고객 인증이 중요한 과정 가운데 하나다. 스마트폰이든, 태블릿PC이든 모든 전자제품에 반도체가 들어가고 최근 들어서는 자동차에도 첨단 반도체가 들어가는 시대다. 무조건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만드는 제품에 맞게 부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인증을 받는 작업이 필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인증 과정에서 당연히 이런저런 문제점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고객이 다양한 요구를 해온다"며 "이를 최대한 빨리 해결해 고객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반도체 기업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근무시간 제약은 세계 시장을 평정한 반도체 산업에 심각한 경쟁력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자업체 관계자는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고객을 상대하면서 주 52시간이 넘어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그쪽에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스마트폰을 만드는 글로벌 기업은 크기 품질 등 세세한 요구조건이 달라 반도체 공급업체에서 일일이 샘플을 보내고 검증을 받고 승인을 받는 과정을 끊임없이 거쳐야 한다. 고객마다 전문인력이 붙어 일을 하기 때문에 교대근무로 일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사정은 디스플레이업계도 마찬가지다. 고객 요구에 따라 디스플레이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제품 출시 시기가 다가올수록 담당 연구원이 고객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주말은 물론 밤샘 작업을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디스플레이업체 관계자는 "제품 개발 기간이 통상 4~8개월까지 걸리고 고객이 제품을 출시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부품업체들이 야근과 주말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며 "보안 문제로 회사에서 근무를 해야 하는데 그런 현실이 반영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업계는 이를 감안하면 현재 3개월로 제한돼 있는 탄력근로시간제는 최대 1년으로 연장하고, 1개월로 제한된 선택적 근로시간제도 최대 3개월로 연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스마트폰 등 세트 생산업체들도 어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 전자제품은 계절적 수요가 있어 집중근무가 필요한 시기가 있는데 현행 근무제로는 대응이 쉽지 않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에어컨은 여름철 성수기 때 집중근무를 해야 하는데 현재 근무제로는 불가능하다"며 "이럴 경우 사전에 수요를 충분히 파악해 미리 생산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를 어떻게 맞추겠느냐"고 토로했다. 사전 생산량보다 수요가 많을 경우에는 품귀현상이 벌어질 테고, 수요가 적을 때는 재고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어떤 경우라도 회사는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조금이라도 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어렵게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세트업체들 역시 탄력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각각 1년, 3개월로 높여주기를 바라고 있다.

섬유사업은 3교대 56시간 근로가 많아 4시간 이상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느냐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24시간 연중 풀가동 시스템인 화섬과 면방 현장은 사람을 더 뽑거나 자동화 투자가 대안이지만 문제는 업황이 좋지 않아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공정상 전기를 끌 수 없어 24시간 돌리는 가연 업종을 비롯한 염색가공 업종은 더 위기다. 제때에 수행하기 위해 현재보다 30% 이상 인원을 늘려야 하는데 현재 내국인은 오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는 쿼터에 묶여 조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려움이 불 보듯 뻔하다. 섬유업계 관계자는 "생산현장에 내국인은 50·60대 고령 근로자가 대부분이고 이마저도 구할 수 없어 불법체류건 합법이건 가리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에게 의존하고 있다"며 "젊은이들이 이런 일자리에 와주면 좋겠지만 이런 자리에 사람들이 오지도 않는데 직격탄은 우리가 맞을 거 같다"며 사정을 토로했다.

철강업계는 업계 특성을 고려한 탄력적근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철강업을 비롯한 장치 산업은 설비에 문제가 발생했을 시 조업 안정이 가장 중요하고 이는 수리와 직결되는데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 탄력적 인력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돌발 수리, 대수리 등 특정 기간은 근무시간이 집중돼 특별연장근로(노사 협의 시) 또는 탄력적근로가 가능하도록 제도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은 연간 시간 기준이 있으며 명확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노사 협의하에 특별연장근로제도가 마련돼 있다.

조선업계는 근로시간 연장에 따른 애로를 토로하고 있다. 조선업에서는 선박을 선주(船主)에게 인도하기 전 완성된 선박의 품질점검 및 오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시운전' 작업이 필수적이다. 실제 해상에서 선박을 1~2주일 시운전하기 때문에 중간에 작업자를 교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중간에 작업자를 교체하는 것이 불가능할뿐더러 반드시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력 수급 문제가 있어 초과근로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당장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황형규 기자 / 이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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