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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정부, 美세이프가드 WTO에 공식 제소…향후 절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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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제소 첫단계는 양자협의…합의 실패시 공식 재판 돌입
전문가 “최종 판정까지 2년 걸려…실효성은 의문”

한국 정부가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모듈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한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공식적으로 제소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6일 WTO에 연간 4억8000만 달러(약 5100억원)의 보복관세를 미국에 부과한다는 양허정지를 통보한 바 있다. 이번 WTO 제소에 승소할 경우 곧바로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4일 “한국산 태양광 전지·모듈과 세탁기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한 미국이 WTO 협정을 위배했다고 보고 제네바 현지시각으로 14일 오전 9시 WTO 사무국에 공식적으로 제소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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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전자제품 매장에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의 세탁기가 진열돼 있다./이덕훈 기자



산업부 관계자는 “그동안 한국 정부는 미국 세이프가드에 대한 WTO 제소 첫번째 절차로 WTO 분쟁해결절차(DSU) 4조에 의거한 양자협의를 지난 2월 1일 요청했지만, 미국측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면서 “이에 따라 WTO에 공식적으로 제소한 뒤 미국의 세이프가드가 WTO 협정 위반이라는 판정을 받아 한국 업계 피해를 최소화할 방침이다”고 설명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 2월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모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를 발동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대형 가정용 세탁기 수입물량에 최대 50%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고, 한국산 태양광 모듈에도 세이프가드 발동 첫해 수입 초과물량에 30%의 관세를 추가로 매겼다. 세이프가드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급증해 자국에 피해가 생길 경우 수입국이 관세를 높이거나 수입량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다.

WTO 제소 첫 단계는 미국 측과의 양자협의다. WTO 협정에 따르면 양국은 적절한 협의를 통해 분쟁을 해소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미국은 30일 이내에 양자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만약 양국이 협의 요청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양자협의에서 합의하지 못할 경우 한국은 WTO에 분쟁해결 패널을 설치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패널이 설치되면 본격적인 재판 절차가 시작되는 것이다.

WTO에서 한국이 승소할 경우 지난달 6일 WTO 상품이사회에 제출했던 양허정지 계획(연간 4억8000만 달러 규모의 보복관세 부과)을 곧바로 시행할 수 있다. 양허정지는 양국이 합의하지 못할 경우 상대국이 관세 인하 조치를 철회하는 식으로 보복관세를 매기는 것이다.

WTO 세이프가드 협정에 따르면 양허정지에 따른 보복관세 부과는 세이프가드 발효 3년 이후부터 가능하다. 2021년에야 실질적인 보복관세 부과가 이뤄지는 셈이다. 하지만 2021년 이전에 한국이 WTO 재판에서 승소하면 양허정지 계획에 따른 보복관세를 승소 시점부터 즉시 부과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경우 미국 세이프가드로 인한 한국 수출품의 추가 관세 부담액이 연간 4억8000만 달러로 보고 이 부담액만큼의 관세를 다른 품목에 붙여 미국측에 부과한다는 계획을 짰다. 세탁기는 1억5000만 달러, 태양광 패널은 3억3000만 달러의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게 한국 정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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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이프가드 최종결정 주요 내용 /산업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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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일각에서는 WTO 제소가 세이프가드 등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한국 기업들의 피해를 줄이는 데는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WTO 제소를 통해 세이프가드가 부당한 조치라는 판정을 얻을 때까지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업계 피해가 지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식 재판은 빨라야 올해 9월에 시작할 전망이다. 한국과 미국이 양자협의에 실패하면 한국은 WTO 패널 설치를 요청하는데, 이 절차만 하더라도 15일 이상 소요된다. 이후 재판을 내릴 패널을 구성하는데도 20일 이상, 패널 검토에만 6~9개월이 걸린다. 빨라도 내년 5월에야 재판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한국이 승소하더라도 미국이 상소하면 상소 판결에만 3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상전문가는 “통상적으로 WTO 분쟁해결 절차는 기본적으로 2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한국이 최종 승소하더라도 이미 큰 피해가 발생한 후”라며 “미국의 세이프가드 기한은 세탁기가 3년, 태양광이 4년이라 WTO 제소 기간 내내 국내 업계 손해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정부가 승소를 하더라도 다른 업종 미국 제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을 뿐 세탁기·태양광 업계 피해를 직접적으로 보상해줄 방안도 없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탁기의 미국 수출액은 2984만 달러로 작년 1분기보다 45.4% 줄었다. 미국 수출이 줄면서 전 세계 수출액도 감소했다. 한국의 세계 세탁기 수출액은 1분기 1억6400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 2억5200만 달러보다 35.1% 줄었다.

올해 1분기 미국에 대한 태양광 수출액은 2억1100만 달러로 작년 1분기보다 4.3% 늘었다. 하지만 세계 수출액이 작년 1분기 10억9600만 달러에서 올해 1분기 13억7600만 달러로 25.6% 증가한 데 비해선 미국 수출액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적게 증가했다. 올해 1분기 태양광 수출 물량의 경우 세이프가드 발동 전에 주문된 것이라 영향이 적었지만, 2분기부터는 대미 수출액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게 태양광 업계의 분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WTO 제소는 미국의 불합리한 세이프가드 발동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단계다”며 “제소 외에도 업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기업에 대한 주요 교역 상대국들의 부당한 수입규제 조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세종=전성필 기자(feel@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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