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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JAPAN NOW] 인구 감소 ‘쇼크’에 일본 아우성 생산가능인구 ‘뚝’…농수산업 존폐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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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 사랑이 유별난 일본에서 멜론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지역인 이바라키현 호코타시. 인구 4만9278명의 호코타시는 시청 홈페이지 배경이 멜론일 정도로 멜론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지만 이제는 옛날 얘기가 돼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600여곳에 달하던 호코타시 내 멜론 생산 농가가 이제는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기후가 변했거나 소비자들 입맛이 변했다는 등의 이유가 아니다. ‘기능실습생’이라는 이름의 외국인 노동자가 불러온 변화다. 인력이 부족해 기능실습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이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운영이 안 될 정도가 됐다.

한철 농사인 멜론으로는 1년 내내 기능실습생에게 월급을 줄 수 없게 되자 선택의 기로에 섰다. 대대로 내려온 멜론이냐 외국인 노동자냐를 놓고 많은 농가들은 후자를 택했다. 멜론 대신 1년 내내 생산이 가능한 야채류로 종목을 바꿨다. 호코타시 야채 재배 농가 숫자는 최근 5년 새 3배로 늘었다. 기능실습생들이 들어오면서 사업 규모도 커져 가족형 농업이 기업형으로 바뀌었다.

호코타시 주민들 선택은 일본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인구 감소에 따른 일손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힘들고 고된 저임금 노동, 서비스업과 농수산업 등은 외국인 없이는 지탱이 힘들어진 상황이 됐다.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한다는, 일본식 접대 문화 ‘오모테나시’가 사라지고 있다며 불평하는 관광객이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일본 사회의 인식은 아직 현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비자 제도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특별한 기술이 없는 외국인 노동력에 대해 최장 5년의 기능실습생 비자를 주로 내준다. 일본 기술을 개발도상국 등에 전파하자는 취지로 기술을 배우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다. 그럴듯한 명분과 달리 현실에서는 저임금 노동력 확보를 위한 제도로 활용된다. 기능실습생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인력 부족은 더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에서도 부랴부랴 우수 기능실습생을 대상으로 5년 더 체류할 수 있도록 하는 비자를 추진 중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영주권 취득 기준(10년 이상 거주)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귀국을 강제토록 할 계획이다.

제도가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다 보니 이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 고충도 커지고 또 외국인 노동자 피해도 늘어나는 등 파열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오사카 경찰은 지난 3월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라멘 체인인 이치란라멘 사장을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불법 근로를 조장했다는 혐의다. 오사카 경찰에 따르면 이치란라멘에서는 주당 28시간(월 112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유학생을 대상으로 초과근무를 시켰다. 월 165시간 동안 일한 사람도 있다. 회사는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기준 이 회사 직원 약 6000여명 가운데 20%인 1200명가량이 외국인(유학생·기능실습생)이다.

매경이코노미

▶저임 외국인 노동자 유입 불구 역부족

최근에는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의 복구 공사 현장에 기능실습생 4명을 포함한 외국인 6명이 투입된 사실이 드러났다. 도쿄전력은 “이들이 근무한 지역은 방사선 방호가 필요한 지역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논란은 커지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일본어를 하지 못해 현장의 위험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처우에 사라지는 기능실습생도 지난해 처음으로 7000명을 넘어서며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기능실습생은 27만4233명이다.

일본 상황이 답답하다고 말할 처지도 아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오는 2037년까지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 폭이 1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크다. OECD 평균이 -0.1%다. 일본에 비해 로봇화도 더디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처우 수준이 일본에 비해 높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남의 얘기처럼 듣기만 하다가는 큰코다칠 날이 금세 눈앞에 올지 모른다.

[도쿄 = 정욱 특파원 woo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8호 (2018.05.16~05.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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