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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토)

[기고]'車산업 생태계' 지킨 한국GM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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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황순하 자동차평론가] [정부·산은 'GM과 대등합 협상' 평가해야…한국GM 재정비·성장 유지 과제로]

KDB산업은행(산은)이 한국GM의 경영회생을 위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LOC(금융제공확약서)를 발급하면서 한국GM 사태가 4개월만에 일단락됐다. 협상 결과는 각 이해집단의 관점에서 미흡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수많은 인수·합병(M&A)과 구조조정의 경험을 가진 GM과의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최선을 다해 적절한 선에서 잘 마무리했다고 본다.

GM은 지난해 9월 구조조정 전문인 카허 카젬 사장을 한국GM CEO(최고경영자)로 보내면서 이미 2년 넘게 다듬어온 한국GM의 구조조정 시나리오를 실행했다. 국내 언론을 자극해 철수설이 불거지게 하는 등 협상의 달인다운 노련함도 보였다. GM 철수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 최대한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강력한 선공이었다. 뒤이은 지난 2월 중순 군산공장 폐쇄 발표는 큰 충격을 줬고 각 이해집단의 과격한 행동과 억측을 유발해 국론분열 상태까지 몰고 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초기에 부처간 혼선을 보이기도 했지만 노조와 GM을 각기 비난하는 격렬한 여론에도 중심을 잃지 않고 경제논리에 입각한 구조조정의 3대 원칙을 견지한 점과 글로벌 기업들의 생리와 GM의 경영상황을 분석하고 기업문화까지 연구해 GM과 대등한 협상을 벌인 점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GM이 고금리 대출이나 매출원가 인상 등으로 국부유출을 계속했다는 비난과 관련, 실사와 시장조사를 통해 근거없는 억측이라고 밝혀낸 것도 한국의 성숙된 개방경제 이미지에 큰 도움이 됐다.

GM이 출자전환을 포함해 초기에 제시했던 금액보다 13억달러 더 많은 64억달러의 구조조정 자금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글로벌 전략에 있어서 한국GM의 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내부적으로 계산된 철수 비용이 구조조정 비용보다 훨씬 더 컸음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협상안이 GM 내부 재무부문의 높은 턱을 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소형차량 개발에서 우수한 디자인센터와 엔지니어링 능력, 세계 최고 수준의 부품업체 경쟁력을 갖춘 한국GM을 대체할 다른 대안이 GM 내에 없다는 점도 드러났다. GM이 소형 SUV 두 차종을 다른 곳에서 만들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은 협상을 위한 허세였다고 본다. 결국 이번 협상은 떠날 생각이 없는 GM과 떠나 보낼 수 없는 정부의 치열한 수 싸움이었다.

정부가 GM에 대한 비난 여론에도 힘겹게 지켜낸 것은 남은 인원들의 고용만이 아니라 자동차산업의 생태계다. 산업 생태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GM을 10년간 한국에 묶어 두고 산은이 주요 결정 사항에 대해 비토권을 다시 확보한 것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급한 불은 껐지만 이번 합의는 길고도 험한 여정의 출발에 불과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합의안을 보고 '10년 뒤에는 한국GM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과제는 앞으로 2~3년 동안 한국GM이 목표원가를 맞추고 조직을 재정비하면서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기 위한 성장동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머니투데이

황순하 자동차평론가


한국GM은 추가적인 수익개선을 위해 R&D(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GM은 2025년까지 현재 25개인 플랫폼을 4개로 줄인다. 그 중 전륜구동 플랫폼(VSS-F)의 소형부문을 맡아 GM이 생산하는 다양한 차종과 옵션사양 개발의 용역을 따내야 한다. 한국이 앞서 있는 연료전지차의 개발이나 자율주행차량의 실주행테스트 사업도 고려해 볼 만하다.

결국 어려운 경영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주체는 한국GM의 경영진이다. 산은도 한국GM 경영진의 책임감 있는 자세를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합의된 10년이 지나도 GM이 한국에서 만족스럽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각 이해그룹이 노력하고 협력하는 게 최우선이지만 정부는 만에 하나 GM이 떠날 경우에 대비한 '플랜B'도 준비해 놓고 상황 변화에 맞춰 계속 업데이트해야 한다. 준비된 자에게는 불행도 비껴간다고 했다.

황순하 자동차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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