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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청바지 입은 꼰대’에 발목잡힌 기업문화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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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활성화한다고 복장 자율화하고, 직급 호칭을 없앴는데 정작 의견은 잘 듣지 않는다. 듣더라도 보고 과정에서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제도로 변질되곤 한다. ‘청바지 입은 꼰대’들이 따로 없다.” (중견기업 대리 ㄱ씨)

“강제 소등하고 1장짜리 보고서 만들기 캠페인을 했지만 변한 게 없다. 불 꺼진 사무실에서 스탠드 켜놓고 일한다. 1장짜리 보고서에 첨부만 30~40장이다. ‘무늬만 혁신’이다. 낭비이자 삽질이다.” (대기업 차장 ㄴ씨)

국내기업들이 조직문화 혁신을 앞다퉈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청바지 입은 꼰대’에게 발목잡혀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불통·비효율·불합리로 요약되는 후진적 문화가 과거보다 개선됐지만 예전 잣대로 세상을 보는 임원들 때문에 근본적 변화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는 14일 발표한 ‘한국 기업의 기업문화와 조직건강도 2차 진단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2016년 1차 진단 후 2년 사이 기업문화 개선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대기업 직장인 2000여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가 주된 내용이다.

대다수 직장인들은 기업문화 개선활동에 대한 평가에서 ‘보여주기’ ‘재미없음’ ‘무늬만 혁신’ ‘청바지 입은 꼰대’ 등 부정적인 단어를 언급했다. 2년 전 후진적 요소로 지적받은 습관적 야근과 비효율적 회의, 불통의 업무방식 등이 예나 지금이나 낙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조사에서 직장인들은 ‘기업문화 개선효과를 체감하는지’ 묻자 59.8%가 “일부 변화는 있으나 개선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벤트성으로 전혀 효과가 없다”는 응답도 28.0%에 달해 87.8%가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집계됐다.

2년 전과 비교해 세부항목별 변화를 살펴보면 ‘야근’이 31점에서 46점으로 올랐지만 50점을 밑돌았다. 회의(39점 → 47점), 보고(41점 → 55점), 업무지시(55점 → 65점)도 상승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었다. 회식(77점→85점)만이 유일하게 ‘우수’ 평가를 받았다.

또 대기업 3개사와 중견기업 3개사, 스타트업 2개사 등 국내 주요기업 8개사를 분석한 ‘조직건강도 심층진단 결과’에서도 7개가 글로벌 기업에 비해 약체인 것으로 진단됐다. 조직건강도는 기업의 조직경쟁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글로벌 컨설팅사인 맥킨지가 1991년 개발한 진단 도구다.

조사 결과 4개사가 최하위 수준, 3개사가 중하위 수준, 중상위 수준은 1개사인 가운데 최상위 수준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영역별 진단결과를 보면 책임소재, 동기부여 항목에선 국내기업이 상대적 우위를 보인 반면 리더십, 외부 지향성, 조율과 통제(시스템), 역량, 방향성 등 대다수 항목에서 글로벌 기업에 뒤처졌다.

대한상의는 조직건강을 해치는 3대 원인으로 비과학적 업무프로세스와 비합리적 성과관리, 리더십 역량부족을 꼽았다. 일례로 중견기업 차장 ㄷ씨는 심층 인터뷰에서 “업무범위, 역할, 책임, 보고라인이 불분명하다보니 본래 내 일이 아닌 일들이 자꾸 추가된다”면서 “덕지덕지 붙어 있는 짐더미 같다. 회사에서 내 역할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이러다 보니 서로 업무를 맡지 않으려고 미루기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밖에 “선배들이 일이 몰리면 그냥 넘어지라고 조언한다. 어차피 연봉 차이는 크지 않으니 거북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게 낫다는 거다. ‘백만원 더 받자고 굳이 열심히 해야 하나’ 이런 분위기가 팽배하다”(대기업 과장 ㄹ씨)라거나 “미어캣 사진을 보면 꼭 우리 회사 직원을 보는 것 같다. 리더는 저 앞에 혼자 서 있고, 중간관리자는 멀찌감치 서서 눈치만 보고, 직원들은 또 한 발 떨어져 구경만 하고 있다”(중견기업 차장 ㅁ씨)는 의견이 나왔다.

박재근 대한상의 기업환경조사본부장은 “빠른 경영환경 변화 대처에 필요한 역량으로 유연성을 꼽지만 이에 적합한 체계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조직은 흔들리게 된다”면서 “프로세스, 구조, 인재육성, 리더십 등 조직운영 요소 전반에 걸쳐 ‘역동성’과 ‘안정적 체계’를 동시에 갖춘 ‘양손잡이’ 조직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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