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속에 앉았던 한 수감자(를 연기하는 시민)가 갑자기 일어섰어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민주화하자고 외쳤습니다.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총을 쐈고 많은 시민들이 죽고 다쳤습니다. '군부독재 타도하고 계엄령 폐지하고 전두환 물러나라'고 외치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수감생활은 비참합니다. 우리를 사람이 아닌 짐승 취급하고 있습니다. 화장실도 두 명씩 함께 가랍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화 하자는데 잘못된 겁니까. 우릴 여기 가두고 폭도, 불순분자 등의 말을 붙여 구타를 일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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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자유공원 관계자의 말입니다. 이곳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해 광주·전남 일대에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에 대해 알 수 있죠.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박성민 학생기자가 새벽 기차를 타고 광주로 향했습니다. 가는 동안 자료를 보며 "너무 잔인한데 진짜일까요" 하는 의구심도 가졌죠.
역사에 관심이 많은 박성민 학생기자가 새벽 기차를 타고 광주로 향했습니다. 가는 동안 5·18 민주화 운동 관련 자료를 읽어보고 사진을 보며 "너무 잔인한데 진짜일까요" 하는 의구심도 가졌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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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상무평화로13(치평동)에 있는 5·18자유공원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역사를 공부할 수 있도록 해둔 곳입니다. 광주역, 광주송정역에서 각각 대중교통으로 10분~15분 걸리는 거리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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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자유공원엔 견학 코너가 있죠. 1년 365일 내내 운영합니다. 20인 이상 단체나 교직원 등 성인 단체가 예약 후 방문할 땐 '오월길 해설사'라 불리는 오월지기가 동행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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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서 우는 학생도 있지만 역사를 그대로 전해야만 한다는 의무감 들어요" 5·18자유공원에서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관계자의 발언입니다. 그는 광주역에서 10~15분 거리에 있는 자유공원서 관람을 원하는 이들에게 안내를 하고 체험 시간을 배정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죠.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소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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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자유공원 안에 있는 자유관엔 전시실, 강의실 등이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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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지기 김원정씨가 봉선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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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극 재연이나 안내하시는 분 모두 역사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바탕으로 지원하신 분들이에요." 이 담당자가 설명한 대로 현장엔 오월지기 김원정 씨가 나와 있었죠. 반나절 동안 소중 학생기자와 함께 할 광주 봉선초등학교 4학년 학생 81명도 동행했답니다. "열한 살 동생들은 조금 시끌시끌하네요." 5·18 관련 영상을 보고 난 후 성민 학생기자가 강의실을 가득 채운 학생들의 왁자지껄 소리에 혀를 내둘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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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오늘 자랑스러운 광주를 돌아보고 오늘만큼은 광주의 얼굴이 되는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은 집에 가서 합니다. 약속했죠?" 이 담당자의 당부에 학생들은 자신 있게 "네!" 하고 외쳤죠. 이후 학생들은 주먹밥을 나눠 먹었는데요. 이는 지난 1980년 5월 21일 광주 항쟁이 조직적으로 변화한 후 계엄군이 광주를 고립시키자 현장 여성 중심으로 밥을 지어 시민군에게 나눠 먹이던 일을 재연한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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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광주 시민들은 서로 도우며 버텼죠. 생필품 사재기나 폭리는 없었고 식량은 나눠 먹었습니다.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시민자치의 힘을 보였던 거죠." 설명을 들은 후라 주먹밥을 더 귀하게 먹을 수 있었어요. 차례로 줄을 지어 기다린 후 두 손 모아 커다란 밥 한 덩이를 받아먹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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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과거로 돌아온 것처럼 무시무시한 트럭과 그 옆에 끌려온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오들오들 떨려요""무서워요""영창 간다!" 학생들은 저마다 소리쳤어요. 봉선초 일부 학생들은 '영창'이란 단어에 주목했는데, 이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명 게임을 따라하며 만들어낸 유행어였기 때문이죠. "여러분. 영창은 군대 내부에 있는 감옥입니다. 그렇게 장난스럽게 말할 대상이 아니에요." 김 오월지기가 학생들에게 일침을 가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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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학생기자가 동행한 이날 견학은 헌병대 중대 내무반, 본부 사무실, 헌병대 식당, 영창, 법정, 들불열사 기념비 순서로 진행됐죠. 사진은 본부 사무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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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학생기자가 취재수첩에 감상을 적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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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학생기자는 "오늘날 우리가 자유롭게 우리의 소리를 내고 살 수 있는 게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 덕분이였다는 것을 알게된 좋은 체험"이라고 말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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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병대 식당은 본래 군인들이 밥을 지어 먹는 곳으로 쓰이지만 1980년 광주에서만큼은 고문실로 쓰였다고 해요. "웃거나 떠들면 빨갱이야. 저놈들처럼 물고문 받아볼 거야?" 학생들이 식당에 앉아 소란스레 떠들자 마네킹인줄로만 알았던 헌병이 걸어 나와 몽둥이로 벽을 크게 수차례 쳤습니다. "으악!" 학생들은 겁먹은 듯 입을 앙다물었죠. "'나는 빨갱이고 폭도입니다'라고 할 때까지 계속 고문해!" 학생들은 헌병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돌렸죠. 그곳엔 커다란 물웅덩이에 머리를 박은 채 고문당하고 있는 시민군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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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영창으로 향했습니다. 영창은 일부 정치군인들의 정권찬탈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구금됐던 곳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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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연행된 분들은 폭도라는 누명을 쓰고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의 갖은 협박에 몸과 마음을 다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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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6시간의 정좌자세 수감생활을 해야 했고 가혹한 구타 등 인권 침해를 당했죠. 본래 한 방에 30명이 들어가야 하지만 150명이 수감됐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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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오월지기의 해설대로 방 안엔 정좌자세의 시민군들이 보였죠. 철창을 잡고 뭐라 외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또, 방 안엔 독방이 있어 처참함을 더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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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자 학생들은 소리치며 우르르 달려 나왔습니다. 잠깐의 체험이었지만 학생들은 귀를 막거나 숨다가도 독재정권을 타도하자는 목소리에 호응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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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구속자들이 군사재판을 받은 곳이죠. 1980년 8월에 5·18 군사재판을 위해 지어졌죠. 당시 군사재판은 진상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법정에 총으로 무장한 헌병을 입장시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후 비공개로 진행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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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자들은 재판 시작 전 부당한 재판과정에서 일부 정치군인들의 정권찬탈 행위와 양민학살 만행을 폭로하며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했죠. 하지만 군사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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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 떠들던 모습과 달리 봉선초등학교 학생들은 진지하게 소감 작성에 임했죠. 4학년 조성원 학생이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나도 시민군이 되어 싸우겠다"는 글귀를 적어 들어 보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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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원, 인영 학생이 소감을 적어 들어 보였습니다. 학생들을 지켜보던 김 오월지기 선생님은 "역사를 잊지 말고 성인이 된다면 항상 투표하라. 투표권을 귀하게 여기라"고 당부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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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도 이 '들불 열사'가 주인공이에요. 그중 박기순·윤상원이죠. 지난 2017년 5월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엄수된 37주기 5·18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바 있는데요. 노래는 지난 1982년 박기순·윤상원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작곡됐죠.
이날 학생기자도 법정에서 당시의 얘기를 소상히 들었죠. 자신을 김영철(들불야학운동가 박기순·윤상원·박용준·박관현·신영일·김영철·박효선 7인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한 연기자가 나와 "518 민주화 운동은 광주 시민 하느님과 광주 시민 모두가 인정하는 정당방위이며 광주 시민 모두가 협조한 의거다. 자랑스러운 민주 시민 광주 시민 만세 만세 만세!" 하고 외쳤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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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연중실시(예약 필수)
장소 광주광역시 서구 5·18자유공원(헌병대 중대 내무반, 본부 사무실, 헌병대 식당, 영창, 법정, 들불열사 기념비)
체험이 끝난 후엔 저마다 느낀점을 적어 냈습니다. 이후 자유공원 안에 걸어두었죠. 박성민 학생기자가 곁을 걸으며 친구들이 적은 글귀를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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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시위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시위에 참여했을 법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고문하고 억울하게 재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어요. 주먹밥을 먹을 땐 광주 시민들의 숭고한 나눔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영창에선 화장실도 같이 쓰고 엄청나게 작은 세면대에 물을 먹으라고 하더군요. 아주 잠깐 있었는데도 답답하고 힘들었죠. 이 모든 것을 겪으며 민주화를 외쳤던 분들을 생각하며 숙연해졌습니다.
5·18자유공원 안엔 역사를 알리기 위해 준비된 다양한 안내책자가 구비돼 있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도 한 권 집어 꼼꼼하게 읽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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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학생기자가 자리를 옮겨서도 책에 푹 빠져 있습니다. 낯가림이 심해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 한 자리가 처음엔 어색했지만 역사를 공부하면서 어느새 수줍음은 다 잊었다고 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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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박성민(서울 이대부속초 6) 학생기자
사진 강민혜 기자 kang.minhye@joongang.co.kr
자료 5·18기념재단 『5·18 열흘 간의 항쟁』, 5·18민주화운동기록관 『5·18민주화운동』
도움말 김원정 5·18기념재단 오월길 안내 해설사 오월지기, 5·18기념문화센터/5·18자유공원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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