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3 (수)

[태평로] "'출산=축복' 생각 없으면 어떤 대책도 無用"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헬조선서 낳으면 금수저 노예…' 살벌한 저출산 댓글 넘쳐

출산 지원 제도 갈 길 멀지만 '아이 낳으면 행복' 인식 정착해야

조선일보

김민철 사회정책부장


그룹 V.O.S 멤버 박지헌씨는 지난 2월 딸을 얻어 3남 3녀의 아빠가 됐다. 요즘 시대엔 드문 다(多)자녀 가족이다 보니 인터뷰 요청도 많이 받는다. 박씨는 한 인터뷰에서 다자녀 출산의 좋은 점에 대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행복하다. 아이를 낳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읽다 보면 박씨 가족에 대한 악플에 속상함을 토로하는 대목을 볼 수 있다. "몇몇 네티즌의 '낳지 마라' '불쌍하다' 등 지나치게 솔직한 글들이 마음 아프다"는 것이다. 박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제발 부탁드립니다. 굳이 지나친 모욕감을 주는 악플은 자제해주세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행태로 여기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저(低)출산 기사에 붙은 댓글을 보다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저출산 관련 기사를 올리면 댓글이 적게는 수백 건, 많게는 수천 건씩 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헬조선에서 아이 낳아봐야 금수저 노예 공급하는 것밖에…" 같은 살벌한 댓글이 적지 않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열망은 높은데, 곳곳에 있는 장애 요인 때문에 실현하지 못하는 데 대한 분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지만 정도가 좀 심하다. 저출산 극복 기사에 좌표를 찍고 작업하는, 드루킹 같은 세력이 있나 의심까지 들 정도다.

저출산 기사·기획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저출산을 극복할 방안이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을 겪은 해외 석학들에게 지혜를 빌려보려고도 했다. 그런데 "출산율을 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마법의 총알'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스즈키 도루 일본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박사) "한국보다 앞서 인구 정책을 도입한 선진국 사례를 볼 때, 온전히 출산으로 인구를 늘린 사례는 거의 없다"(더들리 포스턴 미국 텍사스 A&M대 교수) 같은 답을 듣고 절망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저출산 극복은 백약(百藥)이 무효(無效)일까.

결혼해 아이를 출산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는 여러 사정을 고려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 점에 동의하더라도 애를 낳지 않는 것이 마치 유행이나 저항인 양 포장하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말은 맞는다. 육아수당·육아휴직·보육서비스 확대,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 가족 친화적 직장 만들기 같은 정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여기에다 개인의 행복은 물론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도 같이 추구하도록 하는 교육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한국인구교육학회장인 차우규 교원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웬만한 선진 출산 장려 정책은 거의 다 도입하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저출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가치관을 바꾸는 교육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인구 교육 포럼'을 열고 이와 관련한 문제를 토론하고 있다. 박승렬 교원대 교수는 "출산의 짐을 덜어주지 않는 인구 정책은 공허하고, 출산이 기쁨이고 축복인 가치관과 문화 형성 없이는 어떠한 지원 정책도 맹목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월 신생아 수가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올해 출산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한 지난해 출산율(1.05명)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귀담아들어 볼 만한 얘기 같다.

[김민철 사회정책부장]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