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인하를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보편 요금제 입법안이 지난 11일 규제개혁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면서 제도 도입의 7할 능선을 넘었다. 앞으로 절차는 국무회의 의결과 국회 법안 통과를 남겨두고 있다. 정부는 올 하반기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통신 요금을 강제로 깎는 법안인 만큼, 국민의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이 쉽게 반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보편 요금제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추진한 핵심 정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고위 관계자는 "이르면 다음 달 국무회의 의결까지 마치고 곧바로 국회에 보편 요금제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신 업체들은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違憲) 법안"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정부가 나서서 통신 요금을 지정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인 데다 가뜩이나 위축된 통신 업계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규개위, 7시간 논란 끝에 '규제 신설'
지난 11일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는 보편 요금제 신설을 놓고 7시간 동안 격론을 벌였다. 규개위는 주로 기존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날은 논란이 있는데도 규제 신설안을 표결에 부쳤고 재적 위원 24명 중 13명의 과반 찬성으로 통과됐다. 위원들 간 격론으로 의견이 안 모이는데도 표결을 강행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번 보편 요금제는 정부는 물론이고 시민 단체가 주도한 측면이 강하다. 참여연대, 경실련, 소비자시민모임, 한국소비자연맹, 참여연대 등 시민 연대는 각종 공청회 때마다 보편 요금제 도입을 주장했고, 때때로 집회도 열면서 분위기를 몰아갔다. 시민 단체들은 "통신 서비스는 수도나 전기 못지않게 국민 생활에 중요한 필수재이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나서 최소 요금제를 정해야 한다"며 "통신 업체들은 제대로 요금 경쟁도 하지 않으면서 비싼 요금제로 막대한 이익만 챙겼다"고 주장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통신 업체가 자발적 보편 요금제 도입을 반대하기 때문에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윤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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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바람몰이에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업체들과 알뜰폰 업체들의 반대 목소리는 묻혀 버렸다. 통신 업체 고위 관계자는 "통신 업체들은 '노력 없이 돈 많이 버는 기업'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얘기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알뜰폰 업체 관계자는 "보편 요금제가 도입되면 '30여 곳의 알뜰폰 업체가 다 망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와 시민 단체 측은 '엄살'로 치부했다"고 말했다.
◇영업이익 반 토막 나고 5G 투자 못 할라… 패닉에 빠진 통신 업계
보편 요금제는 이동통신 1위인 SK텔레콤에 2만원대 요금제를 강제하는 방식이다. KT와 LG유플러스가 경쟁사의 저가 요금제에 맞춰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과도한 시장 개입 규제가 설마 법제화되겠느냐’던 통신 3사는 법안의 규개위 통과로 비상이 걸렸다. 현재 통신 3사의 연간 영업이익은 약 3조5000억원 정도다. 작년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추산한 보편 요금제의 요금 절감 효과는 2조2000억원이었다. 보편적 요금제가 도입되면 국내 통신 업계 영업이익의 60~70%가 단번에 날아가는 것이다.
통신 업계에서는 믿었던 규개위가 무너진 만큼, 보편 요금제가 국회까지 통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보편 요금제 도입에 강한 의지를 가진 만큼, 다음 달 법제처와 국무회의 의결은 기정사실이 된 상태다. 국회에서는 자유한국당 등 일부 야당 의원이 반대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요금 인하 법안을 대놓고 반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통신비 인하 정책은 대다수 국민이 지지하는 포퓰리즘 성격이 있는 만큼 정부와 시민 단체의 도입 추진에 대해 정치권도 상당한 압박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보편요금제
정부가 직접 값싼 가격의 통신 요금제를 설계해 통신업체에 이 요금제의 도입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다. 정부는 이 제도를 입법화해 월 3만원대 통신 서비스(데이터 1GB·음성통화 200분)를 월 2만원대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기문 기자(rickym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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