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美北정상회담] 北, 23~25일 핵 실험장 폐쇄 예고
6차례 핵실험한 갱도는 핵물질 종류, 정확한 파괴력 등 알려줄 현장
증거물 확보 못하면 향후 완전한 비핵화 검증·사찰 어려움 겪을수도
靑 "미래 핵포기 의지 밝힌 것"… 전문가 "갱도 4개 이상 존재 가능성"
한·미 당국은 "미래 핵 포기 의지를 밝힌 것"이라며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 사이에선 "여섯 차례 불법 핵실험이 이뤄진 현장을 전문적 사찰·검증 없이 폐쇄하는 것은 과거 핵실험 기록을 없애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핵실험장 갱도 내부엔 북한의 핵 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물질들이 남아 있는데, 폐쇄에 앞서 이 증거물들을 확보해놓지 않으면 향후 비핵화 사찰·검증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 현장조사·검증 배제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남북 정상회담 이틀 뒤인 지난달 29일 브리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실험장 폐쇄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북으로 초청하겠다고 했다"고 했었다. 이는 전문가들이 직접 실험장을 현장 조사하고 제대로 폐쇄되는지 검증토록 하겠다는 뜻으로 비쳤다.
하지만 이번에 북한은 핵실험장 폐쇄 계획을 밝히며 초청 대상에서 전문가를 쏙 뺐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이는 자신들의 핵 능력을 국제사회에 노출해 향후 비핵화 검증에서 활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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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현장에 가지 않으면 핵실험장과 갱도가 제대로 폐기되는지도 명확히 확인하기 힘들다.
과거 한·미·일 정보 당국은 북한 핵실험 때마다 특수 정찰기를 동해 상공에 띄우거나 이동식 탐지 장비를 가동했다. 핵폭발 시 대기 중으로 방출된 제논(Xe)·크립톤(kr) 등 방사성 핵종을 포집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분석해야 핵실험에 쓰인 물질이 플루토늄인지 우라늄인지를 알 수 있다. 2006년 1차 핵실험 때는 제논을 검출해 플루토늄탄임을 파악했지만 이후로는 핵종 포집에 계속 실패했다. 2~6차 핵실험에 어떤 물질이 사용됐는지 지금도 모르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한 정보가 부재한 상황에서 '증거의 보고(寶庫)'인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전성훈 전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은 "풍계리 핵실험장은 북한 핵무기 개발의 핵심 시설로 과거 핵실험에 쓰인 핵물질 종류와 양, 정확한 파괴력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물질들이 갱도 도처에 스며 있다"며 "정말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현장을 보존한 상태에서 가장 먼저 국제사회에 신고해야 할 시설"이라고 했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북한 비핵화의 관건은 핵 시설·물질에 대한 철저한 신고와 사찰·검증"이라며 "풍계리 핵실험장 같은 핵심 핵 시설이 폐기되면 이 과정을 북한의 '고백'에만 의존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백악관도 "국제 전문가들에 의해 사찰 및 충분한 검증이 이뤄질 수 있는 폐쇄가 북한의 비핵화에 있어 핵심 조치"라고 했다.
◇핵실험장 폭파, 미래 핵 포기 맞나
청와대는 이번 핵실험장 폐쇄 조치가 북한의 미래 핵 포기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래 핵 포기'로 단정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직 정보기관 핵심 관계자는 "솔직히 풍계리의 갱도가 4개가 전부인지 확신할 수 없다"며 "우리가 모르는 5번, 6번 갱도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콘크리트로 갱도를 완전히 메워 잔여 핵물질에 대한 접근까지 막아야 한다"고 했다. 단순 폭파 방식으로 갱도 입구만 막을 경우 재활용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보통 여섯 차례 핵실험을 하면 추가 핵실험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만약 필요하더라도 축적된 핵실험을 바탕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면 된다"고 했다. 남성욱 교수는 "풍계리 핵실험장은 바둑으로 치면 사석(捨石·버리는 돌)인데, 북한이 이를 가지고 대마(大馬·넓은 집)를 내주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고 했다.
[이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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