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비핵화 본격 협상]폐기참관 기자단 취재동선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금단의 땅’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가 마침내 전 세계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6차례 핵실험이 실시된 이곳은 그동안 북한 주민조차 출입이 철저히 금지됐다. 북한이 핵실험을 시작한 뒤 풍계리 흙 한줌, 물 한 병을 외국 정보기관에 빼돌리려다 체포돼 처형당한 주민도 한둘이 아니다.
이런 풍계리에 불과 열흘 뒤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기자들이 다수 들어가 취재하게 된다. 오지에 자리 잡은 이곳까진 비행기와 열차, 버스를 갈아타며 꼬박 하루 정도 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외무성의 12일 발표를 통해 외국 기자단의 동선을 미리 살펴본다.
○ 왜 원산국제공항인가
북한 외무성은 “국제기자단을 전용기에 태워 원산까지 데려와 숙소와 기자센터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원산은 풍계리에서 직선거리로 270km 이상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 포항까지 직선거리와 맞먹는다.
그럼에도 북한이 원산에 기자단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동해에 여객기가 착륙할 만한 곳은 원산국제공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원산 이북 함경남북도에 비행장이 10개나 있지만 모두 군용비행장이다. 반면 원산공항은 2013년부터 2년 동안 홍콩 공항건설 전문회사가 공사를 맡아 활주로 길이 3500m의 현대적 공항으로 탈바꿈시켰다. 원산공항에 착륙하면 활주로 옆에 유명한 명사십리 백사장이 펼쳐진 것을 볼 수 있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던 지난해만 해도 북한이 “남조선 것들을 쓸어버리겠다”며 수백 문의 장사정포를 집결시켜 바다를 향해 일제히 불을 뿜던 곳이다.
원산엔 외국인들이 이용하는 고급 숙소도 평양 다음으로 많다. 원산공항 바로 옆에는 군 장성 초대소(휴양시설)와 미사일 전담 부대인 전략군 사령부의 초대소가 있다. 2000년대 이후 지어진 건물이라 깨끗하고 시설도 좋다. 북한이 기자단에 제공할 숙소 및 기자센터 후보지 1순위다. 전략군 초대소를 기자단에 제공한다면 미국을 향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던 부대 간부들이 휴식하던 곳에서 미국 기자들이 핵실험장 폐쇄 소식을 전 세계에 타전하게 되는 셈이다.
매우 깨끗하게 꾸려진 송도원국제야영소도 기자들에게 제공할 가능성이 높은 곳 중 하나다. 이 야영소 바로 옆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출생지로 알려졌고, 지금도 그가 가장 애용하는 휴양시설인 ‘602초대소’가 있다.
○ 숙박용 특별열차로 풍계리로
원산에서 짐을 푼 기자들은 버스를 타고 원산역으로 이동해 특별열차를 타고 풍계리로 이동하게 된다. 이 특별열차가 기자들에게 숙소 역할까지 하는 점을 감안했을 때 최소한 북한에서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춘, 침대칸이 보장된 국제열차가 제공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전력사정이 열악해 디젤 기관차가 특별열차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철로 사정도 좋지 않아 열차 시속은 40∼50km로 제한된다. 원산을 출발해 선진국 기자들에겐 귀에 익지 않을, 꽤 요란한 ‘덜커덩덜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5∼6시간 동안 달려야 한다. 그래도 동해안을 따라 달리기 때문에 경치는 나쁘지 않다. 신포를 지나 약 10분 달리면 짓다만 신포 경수로가 소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나타난다. 원산∼길주 철로 구간은 터널이 매우 많은데, 일부 터널들 입구엔 6·25전쟁 때 미군 전투기들의 기총 사격을 받아 움푹 파인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길주역을 지나 특별 열차는 풍계리 쪽으로 선로를 변경해 꺾어든다. 이 선로는 원래 양강도 백암노동자구로 연결된 지선인데, 풍계역은 중간역이다. 주변에 온통 민둥산밖에 보이지 않는 한적한 풍계역에 특별열차가 정차할 가능성이 높다. 풍계역에서 핵실험장까진 다시 20km 남짓 떨어졌다. 황량한 산골짜기를 따라 인적 하나 보이지 않는 구불구불 외진 오르막길을 버스를 타고 1시간 가까이 달리다 보면 세상 끝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지 모른다. 그 길의 끝에 10년 넘게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가 꺼먼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