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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이진구 기자의 對話]“평양교예단과 동춘의 합동공연 성사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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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환 동춘서커스단장

동아일보

첨단 볼거리가 즐비한 세상에서 아날로그 냄새를 풀풀 풍기는 한 서커스단이 90년 넘게 버티고 사랑받아 온 것을 단순히 ‘향수’나 ‘추억’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박세환 동춘서커스단 단장(74)은 “동춘서커스단은 국민 서커스단”이라며 “적당한 후계자를 찾으면 모든 것을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안산=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줄을 타며 행복했지∼ 춤을 추면 신이 났지. 흰 분칠에 빨간 코로∼ 사랑 얘기 들려줬지….
빼앗긴 들녘에 봄조차 오지 않던 1925년. 그들이 있어 그나마 울고 웃으며 시름을 달랠 수 있었다. “저것이 과연 사람이냐! 귀신이냐! 저 묘기에 박수 한 점 치지 않는 동포는 인정도, 사정도, 피도, 눈물도, 애국심도 없는 것인가!”

박수갈채를 유도하는 사회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한데,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93년. 컴퓨터 그래픽이면 ‘쥬라기 공원’에서 ‘반지의 제왕’까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왜 사람들은 공 굴리고, 줄을 타는 완전 아날로그 공연을 아직도 찾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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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환 동춘서커스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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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입니다만, 솔직히 아직까지 있는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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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


“하하하, 문 닫는다, 폐업한다 뭐 그런 뉴스가 종종 났으니까요. 위기도 많았지만 국민들 성원 덕분에 잘 견디고 7년 전부터는 대부도에 자리 잡고 잘하고 있습니다.”(동춘서커스는 1925년 동춘 박동수가 창단한 한국 최초의 서커스단. 올해로 93년 됐으며 국내 유일의 서커스단이다.)

―많이들 보러 옵니까.

“평일은 두 번. 주말은 네 번이 고정이고, 40인 이상 단체는 원하는 시간에 맞춰 공연을 해줍니다. 공연장이 400석인데 주말에는 회당 70∼80%는 찹니다. 경남 김해, 경북 안동 포항 등 전국에서 버스 대절해 보러 오지요.”(대부도 관광하는 김에 보러 오는 건가요?) “아니요. 서커스가 메인이지요. 5월 5∼7일 연휴 때는 완전 매진돼서 아주 애먹었습니다.”(처음엔 과장이 좀 심한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인터뷰 도중 실제로 단체 관객이 밀려드는데 400석이 꽉 차 간이의자를 놓고 볼 정도였다.)

―관객이 이렇게 많은데 왜 한때 폐업까지 가게 됐나요.

“세계 금융위기가 오고,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A가 발생하면서 약 5개월간 관객이 다 끊겼죠. 더 견딜 수가 없어서 해체 선언을 했는데 그게 알려지면서 ‘동춘을 살리자’는 운동이 일더라고요. 그때가 유인촌 씨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일 땐데 ‘동춘 안 살리면 유인촌을 무인촌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항의까지 나왔지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여기저기서 돈을 융통해 김포시민회관에서 마지막 공연을 열었습니다. 그게 그해 12월 24일인데….”(많이 왔습니까?) “아, 눈이 무릎까지 쌓이도록 내리는데… 진짜 망했다 싶었지요. 그런데 공연 한 시간 전부터 새까만 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어요. 1200석이 회마다 매진되는데…, 한 달 만에 빚 갚고 살아났지요. 동춘서커스단은 국민 극단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울 때마다 국민이 도와줬으니까요. 2003년에도 태풍 매미 때문에 공연장이고 장비고 다 날아가서 망할 뻔했죠. 간신히 경남 진주로 가 엉기성기 천막치고 공연하는데 또 관객이 줄을 잇더라고요. 내가 생각해도 이상해서 손님들에게 물어보니 ‘동춘은 없어지면 안 된다. 우리가 사는 표가 다 기부금이고 후원금이라고 생각해라’라고 하더라고요. 울컥했지요.”

―동춘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습니까.

“요새 말로 하면 연예인이 되고 싶었죠. 사회나 연기 쪽으로…, 노래도 좀 불렀고…. 1963년 입단했는데, 그때는 아∼ 동춘,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봉조 선생이 나발(색소폰)을 불었으니까요. 이주일 남철 남성남 등등…. 그때는 서커스단 15개가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이끌었습니다. 코미디언 서영춘 선생도 동춘에서 조명으로 시작했지요.”

―단원이었다가 단장까지 올라간 건가요.

“지금이야 기획사가 대주지만 그때는 배우가 되려면 자기 돈이 많이 들었어요. 말 타는 연습 춤추는 연습, 전부 자기 돈으로 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시 그만뒀죠. 부산에서 극장 선전부장도 하고 장사를 해 돈을 좀 벌었는데, 1985년인가? 동춘이 어렵다면서 주변에서 인수하라고 권했어요. 동춘이 지방에 가면 사람들이 한 번은 구경 와요. 향수도 있고, 볼거리도 있고…. 내가 보기엔 될 것 같았거든요. 인수하려면 1억 원 정도 필요했는데… 서울 잠실 30평 아파트가 3500만 원 정도 할 때였지요. 반은 주고, 반은 공연하면서 갚는 걸로 하고 인수했지요.”

―대부도에는 언제부터 자리 잡았습니까.(현재 동춘서커스단은 경기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의 임대부지에서 공연하고 있다.)

“2011년 3월인데 안산시 공무원들이 찾아왔어요. 지원해 줄 테니 대부도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겠느냐고요. 일종의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인데…. 그래서 현장답사를 했는데 ‘딱’이다 싶더라고요. 인근에 해수욕장도 있고, 유원지도 있고 식당도 있고…. 그 자체로는 관광객 유입 동력이 없지만 우리 힘으로 관광객을 당기면 시너지 효과가 있겠다 싶은 거지요. 5개월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꽉 차더라고요. 300명만 보러 와 봐요. 밥 먹고 회 먹고 몇백만 원은 훌쩍 쓰지요. 밥만 먹나요? 잠도 자는데….”

―단원이 50명 정도라는데 모집은 어떻게 합니까.

“한국인은 10명 정도고 나머지는 중국인입니다. 중국에는 시립서커스단이 많은데 시와 계약 맺고 데려오죠. 안타까운 게 외국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중국 베이징에서도 관광 산업에 서커스를 가장 많이 활용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2008년 서커스 활성화가 우리나라 관광산업 10대 과제에 들어가 있었는데 정부 바뀌니까 또 흐지부지되더라고요. 너무 안타까워서 뛰어내릴 각오로 담당 공무원을 찾아가 항의했더니 ‘세가 없어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연극협회도 국악협회도 나름의 세가 있는데 우리는 곡예협회라 해봤자 100명도 안 되니까….”

―실례입니다만 서커스를 하면 수입이 좀 됩니까.

“줄 타는 일류 한국인 단원을 쓰려면 한 달에 1000만 원에서 1500만 원 정도 줘야 해요. 얘들은 한 번 외부 공연 나가면 1회에 300만 원 받지요.”(그렇게 많이 받나요?) “요새는 지역 축제가 많으니까요. 한국인 단원으로 다 쓰면 운영이 힘드니까 그래서 중국인을 쓰는 거고…. 중국인 단원은 200만∼300만 원이면 되지요. 그래도 중국에서는 큰돈이에요.”

―볼쇼이나 태양의 서커스와 비교하면 동춘은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캐나다 태양의 서커스가 한국에 왔을 때 1회 공연에 1억2000만 원 받았어요. 우리한테 그 10분의 1만 써주면, 국내 연출가 PD 써서 그보다 훨씬 잘 만들 수 있어요. 돈이 문제지…. 조명이나 3D(3차원)는 우리가 훨씬 앞서고요.”

―서커스 하면 동물 쇼인데… 안 보입니다.

“하나도 안 해요. 동물보호법에 걸리기도 하고….”(걸리다니요?) “동물학대니까요. 동물 서커스는 배고픔과 매로 가르칠 수밖에 없어요. 하지 말라는 걸 굳이 할 필요도 없고, 또 이제는 동물 서커스가 별로 효과가 없어요. 동물원이 많아져서…. 태양의 서커스도 개편하면서 동물 쇼를 다 없앴는데 그래도 지금 연 매출이 1조2000억 원 이상 나오죠.”(그 많은 동물은 다 어디 갔습니까?) “원숭이처럼 작은 건 기증하거나 주고, 코끼리 호랑이같이 큰 건 죽어서 박제해 내가 가지고 있지요.”

―그래도 운영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할인 혜택이 엄청 큽니다.(어른은 2만5000원이지만 예약하면 1만 원 정도 깎아준다. 경로, 장애인, 가족동반도 마찬가지다)

“보통 가족 단위로 많이 보러 옵니다. 3대가 함께 오기도 하는데 다 받으면 표 값만 20만 원 가까이 되니까 너무 부담이 되지요. 그리고 우리가 사회적기업이라 뭔가 사회공헌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회적기업이라고요?) “2009년 어려워서 문 닫을 뻔하다가 살아났다고 했잖아요? 마침 그때 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을 만들었는데 예비 사회적기업에 선정돼 단원 10명의 월급을 첫해는 100%, 두 번째 해는 80%, 세 번째 해는 60%, 네 번째 해는 40%를 받았어요. 참 고맙지요. 지금은 지원을 안 받지만 그게 어딥니까. 그래서 빚도 갚을 겸 우리가 문화 나눔으로 한 해에 10곳 정도 소외계층이나 지역을 찾아 무료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교예단을 남쪽에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화해 무드를 타고 평양교예단과 합동공연을 추진할 생각은 없습니까.

“내가 과거에 평양교예단 단장들을 중국에서 자주 만났어요. 중국에는 서커스대회가 해마다 열리는데 거기서 보는 거죠. 그 사람들이 10개월 전에만 얘기해주면 올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의 대외경제협력을 담당하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고위층도 만났지요. 문제는 이게 돈이 많이 들어요. 일종의 리베이트가…. 나는 그런 돈이 없어서 당시에 그걸 현대아산에 넘겼지요. 평양교예단도 동춘을 잘 알아요. 요즘 남북 분위기가 좋은데 합동공연 하면 좋지요. 해보고 싶기도 하고….”

―가장 힘든 게 무엇입니까.

“솔직히 지금은 힘든 건 없고 내가 그만두기 전에 서커스 아카데미하고 상설극장을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그걸 못해 안타깝죠. 어느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동춘을 흡수하려고 하는데, 동춘의 브랜드 가치가 100억 원이래요. 그만한 상품성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힘이 없어서…. 누가 좀 받쳐줬으면 싶지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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