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문화부 기자 |
“나 머리 묶는 게 나아, 푸는 게 나아?”
밥 먹다 말고 훅 치고 들어오는 여자의 질문. 보통의 남자라면 “둘 다”라고 무난하게 (하지만 다분히 기계적으로) 말하겠지만, 이 남자는 여자를 응시하다가 이렇게 되묻는다.
“오늘? 아니면 평소에?”
요즘 ‘폭발적 매력’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하트시그널 2’의 출연자 김현우 이야기다. 질문자의 의도가 ‘어떤 스타일이 예쁜지에 대한 설명’에 있는 게 아니라 ‘세심한 관심’에 있음을 이해한 답변이다. 행동, 말투, 반응에 이르기까지 여자들이 남자에게 원하는 것들을 완벽하게 보여줘 “사람 아니고 홀로그램인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4주 연속 TV 프로그램 화제성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 ‘러브라인 추리 예능’엔 관전 포인트가 여럿이다. 그중 연애세포를 자극하는 선남선녀들의 달달한 로맨스만큼이나 흥미로운 건, 다양한 성격과 개성의 출연진이 상대의 마음을 얻어가는 치열한 과정이다. 출연자들의 행동을 놓고 ‘팔꿈치 효과’ ‘초두 효과’ 등으로 분석하는 패널들의 재치 있는 설명은 2049 타깃 시청층으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사실 ‘마음을 얻는 기술’은 연애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까운 인간관계에서부터 영업, 정치, 외교 영역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이끄는 힘은 무척 중요하다. 하트시그널에서도 출연자들의 행동을 분석하기 위해 언급했던 이 분야 고전 중 ‘유혹의 기술’이란 책이 있다. 상대가 기꺼이 내가 원하는 것을 내주도록 하는 것이 권력보다 막강함을 일러주는 책이다.
특히 저자는 “지위나 권력, 재력으로 누군가를 누르거나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사회 전 분야에서 더는 용인받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며 “부드럽고 우회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어내는 기술이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사회의 최우선 가치들로 공정성과 평등이 부각되기 시작한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능력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최근 한 항공 재벌 3세의 ‘물컵 투척’을 계기로 그간 저질렀던 사주 일가의 무소불위 갑질에 대한 폭로가 쏟아지고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살 노력 자체가 필요 없던 특별한 환경에서 ‘비뚤어진 특권의식’이 싹텄을 것이다. 그래선지 온 가족이 수사 대상에 오르고 항공면허 취소까지 검토되는 위기 상황에서도 대처가 특이하다. 각종 갑질에 대한 성토에 “청소의 기본은 환기이므로 지적했을 뿐” “뚝배기는 한식에서 사용되며 외국인 셰프가 만들 리 만무하다”고 반박해 여론은 더 나빠졌다. 그런 걸 따지자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위력과 권위에 기댄 횡포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없게 된 시대에는 누구에게나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회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갑질 재벌들이 금요일 밤 이 예능을 보며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을 좀 연구해 보면 어떨까 싶다. 김현우의 ‘홀로그램급’ 전략까지 흉내 내진 못해도 연일 최악의 수를 두는 건 피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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