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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박제균 칼럼]한반도의 금기, 주한미군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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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核 ICBM 포기할 건가

美 담판 위해 핵 개발한 先代와 도박칩 쌓아놓은 金 입지 달라

평화체제 시 美軍 철수론 부상… 핵 없는 北, 미군 없는 南 상정

韓國사회, 철수 견딜 내구력 있나

동아일보

박제균 논설실장


변방에선 제법 난다 긴다 하는 타짜 집안 N. 중원(中原) 도박계의 천하제일 A가문과 한판 붙는 게 목표였다. 수십 년 동안 이리저리 찔러봤지만 A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업계의 정설은 A와 붙으려면 먼저 이쪽이 가진 도박 칩을 모두 보여줘야 한다는 것. N집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이런 칩, 저런 카드를 들이대며 무던히도 애썼다. 그런데 드디어 손자가 일을 냈다. 3대가 모은 칩을 한꺼번에 들이대자 마침내 A가 오케이 했다. 드디어 운명의 한판. 과연 손자는 수십 년 모은 칩을 한꺼번에 올인(다걸기)하는 최후의 도박을 할 것인가.

북한은 6월 12일 북-미 담판에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할 수 있을까. 3대가 어떻게 만들고 지켜온 핵과 미사일인가. 분명한 점은 김정은은 선대(先代)와는 입지가 다르다는 것. 미국의 관심을 끌 만한 칩을 쌓는 과정이었던 김일성 김정일은 결코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핵과 미사일을 확보한 김정은. 드디어 카드로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의 반대급부가 충분한 보상이 된다면. 김정은이 과연 그런 궁극의 베팅을 할지 아직은 신뢰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까지 포기하면 미국으로부터 받을 보상의 골자는 대북제재 해제, 6·25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북-미 수교다. 협상이 순항한다는 전제 아래 이런 평화 정착 과정을 거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너무나 ‘뜨거운 감자’, 아니 금기라고 해도 좋을 어떤 것이 있다. 바로 주한미군 철수 문제다.

미군 철수는 당장 미국이 북한에 보상의 카드로 내놓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이 잘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한다면 필연적으로 주한미군의 효용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문정인 대통령특보가 바로 이 점을 지적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라며 부인하는 듯했지만, 실상은 같은 얘기를 한 것이다. 미군 철수 문제는 평화협정이라는 계산서에 사인한 뒤에 지출해야 하는 현찰의 성격을 띤다.

그 경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천착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에 대해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군의 주둔은 미국의 필요 때문 아닌가. 흔히 좌파 진영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자연히 미군 철수는 없을 것이란 논리적 귀결로 이어진다.

미국은 전 세계 미군기지에 약 15만 명을 주둔시키고 있다. 한국에는 2만8500명으로 일본, 독일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이 있다. 세계 주둔 병력의 5분의 1가량을 순전히 한국 방어만을 위해 두고 있을까. 미국은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미국은 사실상 현대 유일의 제국이다. 주한미군은 제국을 넘보는 중국에 대응하는 전진기지 역할도 한다. 중국을 마주보는 평택에 세계 최대 미군기지가 들어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둘째, 그렇다면 주한미군 철수는 불가능한가. 그건 아니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견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는 냉전 시절 서방세계의 최전선 방어기지 역할을 할 때보다는 떨어졌다. 평화협정 체결로 주한미군의 효용성이 낮아지고 한국 내에서까지 철수 여론이 비등하면 미국으로서도 그대로 놔 둘 이유가 없다. 대중(對中) 견제와 동(東)아시아 전략상 역할은 주일미군 보강을 통해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용을 중시하는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그 가능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셋째, 우리는 과연 주한미군 없는 나라에 살 준비가 돼 있나. 이 물음은 북쪽에는 핵이 없고, 남쪽에는 주한미군이 없는 한반도를 상정한다. 미군은 광복과 함께 남한에 진주한 이래 6·25전쟁 발발 전 1년을 빼놓고는 없던 적이 없었다. 지금 80세 노인도 일곱 살 때 미군이 들어왔다.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은 미군의 존재를 상수(常數)로 받아들이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군사안보 측면에서 따진다면 북한에 핵이 없다면 남쪽에 미군이 없어도 못 살 것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미군 철수가 몰고 올 막대한 충격파를 견딜 내구력을 우리가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때문에 철수보다는 감축이 차선책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 경우도 주한미군이 전략적 의미를 가지려면 1만 명 선 아래로 내려가선 안 될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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