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 항쟁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던 김선옥씨가 38년 전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제공=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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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반반하네”
5·18 당시 광주시민들을 폭행하는 계엄군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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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잠잠해질 무렵 교생실습을 나간 그는 그해 7월 3일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수사관들에게 붙잡혔다. 김씨는 “가니까 ‘여자 대빵 데리고 왔구먼. 얼굴이 반반하네. 데모 안 하게 생긴 년이. 너 이년, 인자 무기징역이다’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저항도 못 하고 당했다는 게 더 비참했어요”
[사진 JTBC '뉴스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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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그 전에 죽도록 두들겨 맞았던 일보다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당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 비참했다”며 “고문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돼 있어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했었고, 이후에도 그날의 일은 입 밖에 꺼낼 수도 없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치욕을 당한 후 다음날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김씨의 삶은 산산조각이 났다. 방황하면서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딸을 임신했다. 수면제를 먹고 목숨을 끊으려 하기도 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충격을 받은 뒤 급성 간암으로 세상을 떴고,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까지 외압 때문에 퇴직하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교육청에 진정서를 내 83년 3월 ‘5?18을 들먹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음악 교사 발령이 났다.
“무엇으로, 어떻게 내 인생을 보상하려고요?”
10일부터 광주 서구 치평동 자유공원 안에서 5·18기념문화센터 주최로 열리는 5·18영창특별전 중 열 번째 '진실의 방'에 걸린 '무너진 스물세살의 꿈' 사연. [5.18기념문화센터 제공=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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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5?18 보상 신청서에 “‘무엇으로, 어떻게 내 인생을 보상하려고요’라는 문구를 넣어 저항 아닌 나름의 저항을 했었다”고 전했다.
보상이 이뤄져 2000만원을 받았지만 허망했다. 김씨는 “세상이 달라져 보상 이야기가 나오고 진실 규명이 진행돼도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여기고 숨죽여 살았다”며 “나는 아직도 1980년 5?18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38년 세월을 담은 사연은 10일부터 5?18영창특별전에 공개된다.
23개의 광주 상흔을 담은 방 중 열 번째 ‘진실의 방’에는 한쪽 벽면에 꽃 위로 노란 나비가 날아오르는 그림 위로 김씨의 사연이 담겼다. 꽃과 노란 나비는 김씨가 겪어왔던 고통과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세상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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