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잘 드는 집은 비싸고, 해가 잘 드는 카페엔 손님이 많다. 해가 잘 드는 도시는 이렇듯 늘 사람으로 북적댄다. ‘해는 인간에게 밥’이니까. 인간계는 육체적, 정신적 자양분인 해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햇빛으로부터의 고립은 사회로부터의 격리며 공포 그 자체. 반대로 혼자임에도 햇빛 한 다발만 있다면 인간은 평화를 얻곤 한다. 자연과 가까이 있을수록 여유로움이 맘속에 샘솟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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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디자인 측면에서 해가 ‘잘’ 든다는 건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는 리조트형 햇빛 디자인이다. 휴양지에 온 것처럼 밝은 태양이 쏟아지는 것이다. 이는 지중해를 마주한 리조트나 남프랑스의 와이너리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준다. 현실로부터의 완벽한 이탈을 디자인하는 방식이다. 햇빛 최면에 취하면 수만 마일 떨어진 곳으로 순간 이동한 느낌을 갖게 된다. 햇빛을 마주한 긴 통창을 두거나, 아예 야외 테라스를 확 넓혀 리조트처럼 꾸미면 가능하다. 과천의 ‘마이알레’, 광주 ‘파머스대디’ 등 넓은 정원과 온실을 갖춘 카페들이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덴 다 이유가 있다. 보통 통창과 테라스 문화는 ‘풍경을 빌릴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해와 더불어 탁 트인 경치를 실내로 끌어들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 구조가 바로 이런 공간이다.
둘째는 교회형 햇빛 디자인이다. 작은 창을 통해 은은하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공간을 따스하게 덥히는 형태. 이런 공간은 생각에 잠기기 좋은 데다 세련된 공간 구성이 가능해 건축가들은 이러한 ‘햇빛 디자인’에 열과 성을 다한다.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스위스의 롱샹 성당, 루이스 바라간의 멕시코 자택 등 과거 수많은 건축가들은 햇빛을 통해 고독마저 디자인해 내고 있다. 홍대 앞 명소인 aA디자인 뮤지엄은 광장처럼 넓은 공간이지만 창의 위치와 구조적 디자인을 통해 사색이 가능한 동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 숨어들 동굴을 원한다. 그 속에서 필요한 건 은근한 햇빛이다. 평온과 추억을 소환할 햇빛. 최근 지어지는 아파트와 카페 등의 공간에 간접 조명 설계가 중요시되는 건 이처럼 당연한 일이다.
맞다. 도시인들에겐 직접 조명과 간접 조명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리조트형 햇빛 디자인이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돌아오는 홀리데이성 이벤트와 같다면, 교회형 햇빛 디자인은 주말마다 찾는 고해성소처럼 규칙적인 일상의 일부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도시 생활의 필수 요소라는 것이다. 네모난 책상에 앉아 네모난 모니터를 보고 네모난 휴대폰으로 남의 일상을 감상하는 걸로 매일을 나는 이들에게 ‘일용할 양식’인 햇빛. 그 디자인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글 한희(문화평론가) 사진 픽사베이, 파머스대디(@farmersdaddy), aA디자인 뮤지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26호 (18.05.01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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