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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동물윤리와 과학 발전 사이에 고민 깊어지는 생명공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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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계 실험동물의 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국동물활동가연대 관계자들이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8.04.24. stowe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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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실험용이 아닙니다.’‘한국은 동물실험의 천국’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전국동물활동가연대 관계자들이‘세계 실험동물의 날’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토끼와 원숭이ㆍ개 등 동물가면을 쓴 이들은“인간의 편의만을 위한 불필요하고 무책임한 동물실험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단체들은 특히“지난해 국내에서 동물실험으로 308만 마리의 동물이 희생됐다”며“동물실험이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이 세계적으로 일고 있지만, 한국은 동물실험이 매우 증가해 동물실험의 천국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동물실험 반대의 근거로 농림수산검역본부의 통계를 제시했다. 한국은 최근 5년간 동물실험 증가율이 70%에 달할 정도로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또 이런 동물 실험의 3분의2가 마취제 사용 없이 심각한 고통과 통증을 유발하는 DㆍE 등급의 동물실험이라고 했다. 더불어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선진국에서는 동물을 사용하지 않는 ‘동물대체시험법’도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동물실험의 결과가 인간 임상실험에 나타날 확률은 5~10%에 불과하다”며“실제로 미국에서 동물실험을 통과한 신약의 부작용으로 매년 약 10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여의도에서도 국회의원과 정부 관계자, 동물단체들이 모여 토론회를 열고 동물복지에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연구 현장의 현실은 어떨까. 최근 들어 동물실험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사람과 유전자가 95% 일치한다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과 관련 인프라가 크게 늘고 있다. ‘인간의 친구’라는 개도 모자라 ‘인간의 사촌’이라는 원숭이 실험이 강조되는 이유는 뭘까. 역설적인 역사가 있다. 1950~60년대 진정제로 개발된 신약 탈리도마이드 때문에 세계 46개국에서 팔과 다리가 짧거나 아예 없는 기형아가 1만 명 넘게 태어나는 비극이 일어났다. 신약개발 전임상 단계 때 쥐(설치류)를 썼던 것이 원인이었다. 이후로 미국에서는 쥐 실험에 성공한 약물에 대해서는 원숭이 실험을 반드시 거치도록 규정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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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대구 동구 동내동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앞마당에서 '실험동물 사랑의 날'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대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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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국내에서 대표적 동물실험 공공 연구기관이다. 이곳에서는 2005년부터 국가영장류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게잡이원숭이 등 영장류 400마리를 보유하고 있다.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다. 생명연은 또 올해 안으로 전북 정읍에 최대 4000마리의 실험용 원숭이를 수용할 수 있는 영장류자원지원센터의 문을 열 예정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의 말처럼 한국이 동물윤리를 중요시하는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고‘동물 실험의 천국’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세계적으로 신약 개발과 유전자 치료 등 바이오산업이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이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한국도 뒤늦게나마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지난해 4월호에 ‘원숭이 왕국’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실었다.“중국이 영장류 연구에서 세계적 리더로 자리 잡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실험용 원숭이 생산의 90%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과학 굴기(堀起)를 천명한 중국이 대표적 미래산업으로 생명공학을 집중 육성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생명공학연구원 김형진 실험동물자원센터장의 항변이 잊히지 않는다. “중국은 최근 실험용 원숭이를 자원무기로 삼아 수출 물량까지 제한하고 있는데, 시민단체들의 말처럼 동물 실험도 하지 않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나 대체실험으로 약을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먹을 수 있습니까.”‘세계 실험동물의 날’, 동물 윤리와 인류의 건강 사이에 서 있는 과학자들의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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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산업부 기자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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