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나비 보려고 금관화 재배했더니
멕시코 이주 포기한 개체군 등장
원충 감염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기후변화로 ‘여행하지 않는 동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북미 미국과 캐나다에서 멕시코로 건너가 월동하던 제왕나비 개체군 중 일부가 월동 여행을 하지 않는 사례가 나타났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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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 많은 동물들은, 그들이 존재한 시간만큼이나 오래전부터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살아왔다. 이제는 ‘철새’하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반사적으로 떠오르지만, 철새들은 이 혼란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자연스럽게 대륙과 대륙을 넘나들었다.
많은 수의 동물들이 환경이 다른 서식지로 이동하는 행위를 통틀어서 ‘이주’라고 부른다. 이주 행동은 철새 말고도 대형 초식동물이나 곤충류, 어류 등 매우 다양한 동물들에서 나타난다. 어찌보면 동물들의 입장에서 익숙한 곳을 벗어난 이러한 ‘여행’은 여러 위험을 수반하기도 하고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이 번식이나 생존에 더 좋은 조건을 제공하는 경우, 동물들은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왔다. 또한, 이런 본능은 긴 진화를 통해 동물들의 생활사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장거리 동물’일수록 감염 위험 적다
안락한 기후조건이나 풍부한 먹이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 동물의 장거리 이주는 해당 동물들의 질병에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는 동물들이 멀리 이동할수록 갖고 있던 병원체를 멀리 옮긴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의 이주와 관련된 다양한 생태적 과정을 고려해보면 그 관계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최근 연구들은 같은 동물 종 안에서도 장거리를 이주하는 동물들일수록 이주하지 않고 정착해서 살아가는 동물들보다 질병 감염 위험이 낮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이것을 설명하는 기전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주 탈출’(migratory escape)이다. 동물들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동시에 이동함으로써, 살던 곳의 토양이나 물 등에 축적될 수 있는 병원체나 기생충들로부터 탈출한다. 이듬해 이 동물들이 돌아올 때까지, 감염시킬 숙주를 잃은 병원체들은 이 지역에서 많은 수가 제거됨으로써, 질병이 조절될 수 있는 셈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주 도태’(migratory culling)다. 야생동물에게 장거리 여행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부담스러운 행동이다. 따라서 질병에 감염된 동물들은 결국 이주과정에서 살아남지 못하는데, 결국 이를 통해 질병을 가진 동물들은 자연적으로 도태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오히려 야생동물에서 먼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전체 개체군의 감염 위험을 낮추는데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눌러앉은 제왕나비들
그런데 최근 들어 동물들의 이주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여행하지 않는 동물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이동하던 황새들이 스페인에서 일 년 내내 머무르기도 하고, 넓은 북미 평야를 대규모로 이동하던 순록들은 그 움직임이 많이 줄었다. 유랑하며 살던 박쥐들은 호주 도심의 정원 주변에 터를 잡았다. 이들이 정착생활을 하거나 이주 거리가 짧아진 주요 이유는 바로 지구온난화와 계절성이 없는 인공 먹이 때문이다. 예컨대 위도간의 온도 격차가 줄어들면서 동물들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장거리를 이동할 필요가 사라지거나, 이동을 하더라도 그 거리가 현저히 짧아졌다. 그런가하면 쓰레기 매립지 등 일 년 내내 안정적인 ‘인공 먹이’가 많아지면서 특별히 먹이가 풍부한 곳을 찾아 떠날 필요가 없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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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랜기간 장거리를 이동하던 동물들이 한 곳에 눌러 앉게 됨으로써, 연쇄적인 생태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동물과 질병들이 갖고있던 관계의 변화이다. 소니아 알티저 교수 연구팀은 제왕나비와 이들의 장 속에서 유충을 키우는 기생충(Ophryocystis elektroscirrha)을 모델로 이 주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제왕나비들은 매년 가을 미국 북부 지역이나 캐나다에서 출발해 멕시코까지 엄청난 규모를 이루며 약 2500㎞를 날아가 월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연 서식지 파괴와 함께 감소하는 제왕나비의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미국의 정원에선 ‘금관화’(tropical milkweed)라는 식물 재배가 증가했다. 그러나 북미 자생 아스클레피아스속 식물(milkweed)들과는 다르게 열대에서 수입한 이 식물들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나비들에게 먹이를 제공했다. 그 결과 나비들은 멕시코까지 가는 대신 미국 동남부 걸프 지역에 머물렀고, 정주성을 띄는 제왕제비 개체군들이 등장했다.
제왕나비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미국에서 재배된 금관화.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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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멀리 멕시코에서 다시 올라오는 나비들과 미국 남부에 정착해 사는 정주성 개체군들의 원충 감염율을 비교한 결과, 장거리 이동을 포기한 정주성 나비들이 약 9배 이상 더 많은 원충에 감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향후 이 외래종인 금관화가 정주성 나비들은 물론이고, 이곳을 지나가는 이주성 나비들에게마저 기생충 감염을 증폭시키는 근원지 역할을 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금관화 잘라내기 시작했지만…
제왕나비는 그나마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이들을 모니터링하는 시민과학자들에 의해 그 피해가 잘 알려진 사례다. 최근 들어서 사람들이 가을쯤 정원에서 키우던 금관화를 잘라내기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개체수가 많이 줄었고, 이주 행동에도 혼란을 겪고있는 제왕나비들의 장거리 여행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야생동물의 장거리 이주에 일으키는 변화는, 생각보다 복잡한 생태적 경로들을 거쳐 이들의 질병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제왕나비 사례는 잘 보여주고 있다.
황주선 질병생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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