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윤동주, 길 잃은 세계인에게 삶의 방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다고 기치로 전 NHK PD '생명의 시인 윤동주' 출간 기념 방한

연합뉴스

새'생명의 시인 윤동주' 출간한 다고 기치로 씨.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윤동주 시인은 사람이 어떻게 살면 되느냐 하는 근본적인 테마에서 출발해 시를 만든 사람입니다. 지금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질문 앞에서 길을 잃은 상태인데, 그렇게 미로를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윤동주는 틀림없는 지표를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오랫동안 PD로 일한 다고 기치로 씨는 저서 '생명의 시인 윤동주- 모든 죽어가는 것이 시가 되기까지'(한울) 한국 출간을 기념해 방한, 24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PD로 일한 1995년 KBS와 공동으로 다큐멘터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일본 통치하의 청춘과 죽음'을 제작하는 등 30여년간 윤동주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그 안에 담긴 시인의 사상과 철학을 연구했다. 그 결과물을 집대성해 이 책을 낸 것. 그는 오래전부터 윤동주와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틈틈이 한국어를 공부해 현재 높은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한다. 이날 인터뷰 역시 한국어로 이뤄졌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윤동주 시 시계의 결정적 개념은 '생명'이다.

"모든 사람이 한계가 있는 목숨을 살고 있죠. 죽을 목숨, 그걸 '모털'(mortal)이라고 합니다. '서시'에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이 있지요. 윤동주가 소장한 책 중 철학자 딜타이의 '근세 미학사'가 있는데, 직접 줄을 치고 특별히 체크한 부분이 "죽어야 하는 창조자, 시인"이라는 표현입니다. 이걸 보면 '서시'는 모털한 자기 생명에 대한 각오라고 할 수 있죠."

연합뉴스

다고 기치로 씨가 발굴한 윤동주 사진. 현존하는 윤동주 최후의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윤동주. [연합뉴스 자료사진]



'별헤는 밤'도 시인이 깊은 고민 끝에 마지막 부분을 추가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처음에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로 끝내고 '1941년 11월 5일'이라고 날짜까지 썼다가 나중에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를 더했다는 것이다.

"윤동주는 원래 시집 제목을 '병원'으로 하려고 했어요. 당시 사회 전체가 병에 걸린 상태였잖아요. 생명 경시, 파시즘이 가득차 있고 암흑기였죠. 그러다 약 2주 동안 깊이 생각했고, 상처와 고뇌 속에서 드라마틱하게 도약한 것입니다. 시집 제목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바꾸고 '별 헤는 밤' 마지막 부분에 이모털(immortal)한 세계, 영원한 생명의 이야기를 넣은 것입니다. 이런 도약은 문학의 기적이랄까요."

다른 시 '못 자는 밤' 원고에도 시인이 남긴 특별한 메모가 있다고 설명한다. "미(美)를 인정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참여를 기꺼이 승인하고 생명에 참가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다.

"미국 작가 월도 프랭크를 인용했어요. 시를 쓴 원고지에 일본어 그대로 인용해 메모를 남긴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 당시 윤동주의 결정적 철학이었다는 것이죠. 그것이 시인의 한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윤동주 시인의 보편적인 휴머니즘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민족시인, 저항시인인 것도 사실입니다. 일제 말기에 한국어 사용 자체가 금지되는 역사의 암흑기에 모국어로 시를 쓰겠다 했죠. 그렇다고 해도 이면성, '더블 이미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북간도에서 태어나 평양과 서울, 일본 도쿄를 거쳐 교토에서 돌아가신 분으로서 디아스포라, 국경을 넘는 경향을 지니면서 민족적인 부분과 국제적인 부분을 함께 추구했다고 봐야 합니다."

윤동주의 삶과 문학은 다고 기치로 씨의 개인 삶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저는 NHK PD로서 일제 치하 한국사람들의 고통을 전달해야 한다, 알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했고 그 다큐 프로그램은 일찍이 끝났지만, 윤동주 시가 제 개인에게 보물이 된 겁니다.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시인의 말이 저에게 '어떻게 살면 되느냐'라는 질문을 항상 했어요. 제게 윤동주는 아주 특별한 세계이고, 앞으로 무슨 글을 써도 그 바탕엔 '윤동주 정신'이 있을 겁니다."

연합뉴스


min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