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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김창균 칼럼] 드루킹 사건을 적폐 청산 거울에 비춰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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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시절 정권 의혹 공격 때 “후보 사퇴” “靑 배후” 마구 몰더니

김경수 의원 댓글 관련 의혹엔 “일부 당원 일탈 행위” 불출마 만류

野 특검 요구는 “대선 불복” 비난… 상대 심판했던 잣대 어디로 갔나

조선일보

김창균 논설위원


강원지사 보궐선거를 닷새 앞둔 2011년 4월 22일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 측 불법 전화 홍보가 적발됐다. 엄 후보는 “적극 지지자들의 일탈 행위”라고 했지만 민주당은 엄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한나라당 당원 두 명이 가담했고, 억대 경비가 투입된 것을 보면 윗선이 개입된 게 분명하다는 거였다.

댓글 여론 조작 혐의로 구속된 드루킹과 공범 2명은 민주당에 매달 당비를 내온 진성 당원이다. 드루킹은 댓글 공작을 하는 사무실 운영비로 연 11억원이 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일부 당원의 일탈 행위"라고 했다. 드루킹과 연락을 주고받은 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경남지사 선거 불출마를 검토하자 "실체가 없는 의혹"이라며 만류했다.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아침 선관위 홈페이지가 디도스 공격을 받았다.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수행 비서 소행이었다. 민주당은 최 의원이 당 홍보기획위원장이라는 점을 들어 한나라당 지도부와 청와대를 배후로 지목했다. 통진당 이정희 대표는 "집권당 중진 의원 비서 선관위 디도스 공격, 혼자 했을 리 없지"라고 했다. 한나라당은 사건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특검을 수용했고 최 의원을 탈당시켰다. 최 의원은 경찰·검찰·특검의 연이은 수사에서 무혐의로 확인됐다.

김경수 의원 보좌관은 작년 9월 드루킹에게 현금 500만원을 차용증 없이 받았다. 한 달 뒤 검찰은 드루킹의 불법 선거운동 혐의를 불기소 처분했다. 보좌관은 드루킹이 지난 3월 25일 구속된 직후 돈을 되돌려줬다. 김 의원은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이후 봉하마을을 지켰고 문재인 후보 시절 대변인과 수행실장을 지낸 이 정권의 핵심 중 핵심이다. 디도스 사건 당시 이명박 정권과 친박 출신 최구식 의원 관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민주당은 드루킹 사건에 대한 야 3당의 특검 요구를 "대선 불복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2012년 대선 직전 터져 나온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민주당은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을 고발했다. 1심, 2심 모두 무죄판결이 나왔다. 김 청장이 수사를 방해했다는 유일한 근거는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주장이었다. 그 주장은 다른 17명의 증언과 배치됐다. 권 과장의 핵심 폭로 내용도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당은 "정권 눈치 보기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드루킹 사건이 터지자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드루킹이 김 의원에게 일방적으로 문자를 보냈고, 김 의원은 대부분 열어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 청장의 말을 뒤집는 증거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졌다. 이 청장의 사건 은폐 시도에 대한 폭로가 경찰 내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셈이다. 김 의원과 드루킹이 '텔레그램'이나 '시그널'같이 보안성이 높은 메신저로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서울경찰청은 아직 김 의원 휴대폰조차 확보하지 않고 있다. 증거를 없앨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이런 경찰에 수사를 계속 맡기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정권 눈치를 보는 이 청장의 태도가 믿음직했을 것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징역 4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원 전 원장이 선거법 위반 활동을 하라고 지시한 증거는 없었다. 대법원은 "사이버팀이 선거법 위반 행위를 할 때 (원 전 원장이) 지시를 하고 보고를 받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순차적으로 범행에 공모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결했다. 두 대법관은 원 전 원장의 공모 관련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김경수 의원이 기사 목록을 보내면 드루킹은 '처리하겠습니다'라는 답글을 보냈다. 김 의원은 순수하게 홍보해 달라는 뜻이었다고 주장한다. 김 의원 휴대폰 속에 본인이 보낸 문자가 얼마나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드루킹 휴대폰 속에는 자신들의 댓글 작업 결과를 김 의원에게 보고한 내용이 빼곡하게 남아 있다. 지금의 대법원 적폐 판결 방식대로라면 김 의원은 "드루킹이 선거법을 위반할 때 지시를 하고 보고를 받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순차적으로 범행에 공모했다"는 말이 된다.

여권은 드루킹 의혹을 야당이 부풀리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렇다면 만일 지난 정권 때 드루킹 사건이 터졌다면 자신들이 어떻게 대처했을지 떠올려 보길 바란다. 상대방 적폐에 들이대던 그 가혹한 잣대는 지금 어디로 갔는가.

[김창균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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