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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전문기자 칼럼] 정상회담, 이마에 '和'라 써 붙이고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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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核 위협하던 김정은을 회담으로 끌어낸 건 국제 제재

和親할 뜻 있어도 속에 감추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성과 얻어

조선일보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우리 국방부가 23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격 중단했다. 키리졸브 연습 일정도 조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가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로운 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라니 어이가 없다. 상대는 우리와의 회담을 앞두고 "핵 무력을 완성했다"고 떠드는 판인데, 우리 군(軍)은 거꾸로 물러터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치인들은 때로 적(敵)과도 악수해야 한다. 그들이 적의(敵意)를 잠시 내려놓고 손을 내밀 수 있는 건 협상이 어긋났을 때 군을 믿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군이 지금 북한 김정은을 향해 그렇게 하고 있다. 악수는 군의 몫이 아니다.

일본 산케이신문 특별취재팀이 쓴 '모택동 비록'에는 1969년 중·소 국경분쟁 당시 중국 정치인과 군부의 역할 분담 사례가 소개돼 있다. 그해 3월 우수리강 전바오다오(珍寶島)에서 양국 군이 맞붙더니 8월에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중국 국경경비대와 소련 기갑부대가 충돌했다. 같은 달 미 언론은 "소련이 핵미사일로 중국을 선제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긴장이 극에 달하자 양국 총리가 나섰다. 소련의 코시긴과 중국의 저우언라이가 그해 9월 베이징에서 전격 회동해 양국 군을 분쟁 지역에서 철수시키고 교섭을 통해 국경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저우언라이는 사람 좋은 표정을 하고 코시긴과 만났지만 중국 군부는 반대로 긴장의 고삐를 조였다. 당시 국방부장 린뱌오는 장군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 나지 않을 확률은 80%쯤이다. 하지만 8할의 가능성에 기대어 대비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몽골에 있는 소련 기지로부터 베이징까지 수백㎞다. 탄도미사일이 겨우 몇 분 만에 도달하는 거리란 말이다." 그러고는 베이징 주변 비행장의 전투기를 이동 배치해 소련을 압박했다. 소련은 그런 중국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회담은 평화롭게 끝났다.

북핵 폐기는 아직 다다르지 못한 목적지이고, 우리는 그 도정(道程)에 서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걸핏하면 핵 위협을 가하던 김정은을 그 길로 인도한 것은 평화 구호가 아니라 미 항공모함과 전투기들의 잇단 무력시위, 그리고 북한 경제를 뒤흔드는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다.

"트럼프라면 정말로 우릴 끝장낼지 모른다"는 김정은의 인식 변화가 가져온 긍정적 자세 전환이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2015년 8월 DMZ 목함지뢰 도발 대응 과정에서 이미 했다. 당시 군의 단호한 대처가 뒷받침됐기에 우리는 북측의 유감 표명을 받아낼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면 만면에 미소 지으며 악수하는 장면을 전 세계에 보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왼손에 핵을 쥐고 오른손을 내미는데 우리 대통령이 평화 메시지만 쥐고 있어선 곤란하다. 김정은에게 우리와 국제사회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 요구에 불응할 경우 어떤 대가가 기다리고 있는지 명확히 알려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의 의지가 간절할수록 그 뜻을 잠시 접어두는 전략이 필요하다.

1853년 페리의 흑선(黑船)이 도쿄 앞바다에서 무력시위를 벌이며 개항을 요구하자 당시 미토번(藩) 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는 쇼군(將軍)에게 '속을 다 드러내고 대응하지 말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태평성대가 계속됐으므로 지금 상태로 전쟁은 어렵습니다. 천하가 전쟁을 각오한 상태에서 화친을 맺는다면 몰라도, 화친을 위주로 하다가 전쟁이 나면 어찌 할 방법이 없습니다. 화친 가능성은 국방 담당자들만의 극비로 하고 겉으론 전쟁할 각오를 천명해야 합니다."

그는 "배꼽 아래 '和(화)'라는 글자를 내놓고 다녀서는 자연히 밖으로 새어 나가게 된다"며 화친할 뜻이 있더라도 속을 보여주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우리 정부는 어떤가. 배꼽 아래도 아니고 아예 이마에다 '和'를 붙이고 회담하러 갈 태세 아닌가.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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