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불행한 현실" 공개 우려
영국, 하루 4건꼴 反유대인 범죄
동유럽 극우 집권도 영향 끼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유럽에서 다시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반(反)유대인주의에 대해 공개적인 우려를 표시했다. 지난 22일 이스라엘 방송사 '채널10'과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유럽에서 난민 수용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던 메르켈 총리가 이런 걱정을 할 정도로 최근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심상치 않다. 2015년 이후 유럽에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적대적인 아랍계 난민들이 대거 몰려온 것이 주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독일에서는 지난 18일 20대 유대인 남성 2명이 대낮에 베를린 시내에서 '묻지 마 폭행'을 당한 영상이 공개됐다. 3명의 가해자는 아랍어로 "여기 유대인 있다"고 외치며 물병·허리띠 등으로 피해자들을 폭행한 뒤 달아났다. 피해자들은 유대인 전통 모자인 '스컬캡'을 쓰고 있었다. 같은 날 독일 남부 도시 콘스탄스의 한 극장은 나치를 상징하는 문양이 달린 옷을 입은 관객들에게 연극 무료입장권을 나눠주겠다는 공지를 올렸고, 검찰이 반유대주의 행위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프랑스에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는 흉악 범죄가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달 파리에서는 홀로코스트 당시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85세 유대인 독거 여성이 살해당했다. 범인은 이웃에 사는 20대 청년 둘이었는데, "유대인이라 돈이 많을 것 같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작년 4월에도 파리에서 27세 무슬림 청년이 65세 유대인 여성이 사는 아파트에 침입해 마구 폭행한 뒤 창문 밖으로 내던져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영국에서도 반유대주의 범행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영국의 유대인 단체인 CST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에서 발생한 유대인 대상 범죄는 1382건으로 하루 4건꼴이었다. 1984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였다. 폭행, 인종차별적 폭언, 차량 훼손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CST는 설명했다.
이슬람 난민 유입 외에도 폴란드·헝가리 등 동유럽에서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극우 세력이 집권한 것도 반유대주의를 부추기는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 1월 폴란드는 홀로코스트에 폴란드가 책임이 있다는 표현만 해도 형사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켜 이스라엘과 갈등을 벌였다.
반유대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유럽 각국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독일은 반유대주의 행동을 반복하는 이민자의 체류권을 박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초·중·고에서 유대인 학생이 괴롭힘을 당하면 학교 측이 의무적으로 보고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극우주의가 득세하는 것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적으로 간주하는 극좌 세력의 힘이 커지는 것도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확산되는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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