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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단독] ‘원산댁’ 아들 정은, 형들 제친 건 남다른 승부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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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을 말하다

② 후계 권력 장악한 로열패밀리 막내
김정은의 출생 스토리는 비밀에 싸여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생모 고용희 사이에서 1984년 태어났다는 정도만 확인됐다. 고용희는 북송 재일교포 출신 무용수다. 제주 출신인 그녀는 아버지 고경택을 따라 일제시대 오사카로 건너갔고, 1960년대 북송선을 탔다.

영화배우 출신 성혜림과 동거하던 김정일이 어떻게 고용희와 인연을 맺었는지도 베일 속에 있다. 북송선이 도착한 곳이 강원도 원산이라 고용희가 평양 권력 내에서 한때 ‘원산댁’으로 불렸다는 전언도 있다. 김정은이 원산 인근에 마식령스키장을 짓는 등 관광지구 개발에 공을 들이고 친형 정철, 여동생 여정(노동당 제1부부장)과 함께 원산의 전용 별장에 자주 들르는 게 원산과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김정은의 출생이나 성장 과정에 대해 공식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집권 7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제대로 된 사진이나 기록 영상은 없다.

고용희, 북송선 도착한 곳이 원산

중앙일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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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10대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우상화를 위한 공백기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기 북한에서 대규모 집단 아사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최고지도자의 서방 유학을 내세우긴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생모 고용희를 ‘존경하는 어머니’로 내세우려는 움직임이 2002년께 감지됐지만 곧 중단됐다. 고용희의 부친이 일본 군수공장에서 간부로 일한 경력 등이 조총련 등의 입을 통해 북한 내부로 알려질 경우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런 상황은 백두산 출생설을 만들어 이른바 ‘백두혈통’ 신화를 조작한 김정일 때와 다르다. 1941년 브야츠크 병영에서 소련군 장교 김일성의 아들로 태어난 김정일을 북한은 ‘1942년 백두산 탄생’으로 선전했다. 유년기 사진과 김일성대학 시기의 군사훈련 영상, 1964년 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김일성을 따라다니던 모습 등이 북한 관영TV를 통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김정일 “형 정철이는 착해서 안돼”

김정은의 성장 과정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건 1998년 여름이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뇌졸중으로 몇 달간 공개활동을 중단했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에 이목이 집중됐고, 3대 세습을 강행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정철·여정과 함께 한 스위스 유학생활에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졌다. 유학생활 중 김정은은 두각을 나타내거나 우수한 자질을 보이지는 못했다는 게 교사·학생의 전언이다.

급우인 미카엘로는 “김정은은 컴퓨터 게임과 유명 브랜드의 운동화, 액션영화에 관심이 있었고 특히 경쟁에서 지는 걸 무척 싫어했다”고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직후 CNN 인터뷰에서 “김정은의 성격을 파악하려고 미 당국이 스위스 유학 당시 김정은의 친구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했으며 김정은을 ‘매우 위험하고 폭력적이며 과대망상증을 보이는 인물’로 결론내렸다”고 언급한 바 있다.

김정일이 막내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낙점한 건 뜻밖이었다. 부자세습 강행 시 무엇보다 봉건왕조 시기의 장자 계승 원칙을 따를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성혜림과의 사이에 태어난 장남 김정남은 일찌감치 눈 밖에 났다.

김정남은 한 언론인과의 메일에서 "서방 유학을 통해 자본주의에 물든 나를 보며 아버지는 못마땅해하셨다”고 밝혔다. 차남 김정철의 경우 호르몬계 질환으로 여성스러운 목소리가 나타나고 가슴이 불거지는 등 문제가 생겨 낙마했다. 결국 김정일은 사망 1년여 전인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를 통해 26세의 막내 김정은을 후계자로 선택했다.



유학 때 동창 “김정은, 지기 싫어해”

김정은이 후계권력을 따낸 게 운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권력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선대 수령인 김일성·김정일의 기질과 외모를 닮은 점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알려진 후지모토 겐지는 "내가 본 ‘정은 왕자’(김정은을 지칭)는 지도자가 될 성품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편을 나눠 농구경기를 할 경우 정철은 종료 후 ‘수고했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진 반면, 김정은은 반드시 ‘총화’(결산 모임)를 했다는 것이다. 잘잘못을 따지고 다음부터 어떻게 하라는 독촉이 쏟아졌다. 이 모습에 김정일 위원장은 "정철이는 너무 착해서 못쓴다. 나를 가장 빼닮은 건 정은”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후계 지위를 차지한 김정은은 권력 유지에 누구보다 냉혹함을 보였다. 한때 후계경쟁 관계였던 김정남을 독살한 건 후환을 없애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김정은 체제 유고 시 중국 지도부가 ‘백두혈통’의 장남인 김정남을 옹립할 것이란 서방 언론의 관측이 김정은을 자극했을 수 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원장은 "아버지가 후견인으로 낙점해 준 고모부 장성택을 무참히 살해한 것도 결국 권력 장악을 위한 본보기식 숙청”이라고 말했다.

권력 위해 맏형 정남·고모부 제거

집권 초기 체제 붕괴론이 들끓었지만 한·미 당국은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통치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핵과 미사일 도발 카드에 이어 체제 생존 차원의 전술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과거 미국을 골탕먹인 얕은 수로는 노회한 비즈니스맨 트럼프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게 김정은의 고민거리다.

대남 위협에 싸늘해진 국민 여론을 정상회담 이벤트나 ‘비핵화’ 제스처만으로 돌려세우는 것도 쉽지 않다.

이틀 뒤 판문점 정상회담은 김정은에게 허용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핵을 머리에 이고서는 권력 유지와 체제 생존이 불가능하다. 김정은이 5년 전 야심차게 내걸었던 경제·핵 병진노선의 간판을 지난주 떼낸 건 그 증표다. 정상회담 테이블이 개과천선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언약의 무대’가 돼야 하는 이유다.

<글 싣는 순서>
① 핵 야망과 체제 생존 사이 고민

② 후계 권력 장악한 로열패밀리 막내

③ 문제는 민생, 개혁·개방 할 수 있을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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