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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마음산책]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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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과 간소한 삶의 실천이 행복의 조건이 될 터

다른 것 받아들이면 마음에 풋풋한 공간 생겨나

중앙일보

문태준 시인.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라는 부제가 붙은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자연 속 작은 집에 살면서 홀로 밥을 지어 먹고, 홀로 잠을 자면서 단순하고 느리게 생활하는 일과를 기록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촬영지는 제주도의 한 오프그리드 하우스로 알려져 있다. 오프그리드 하우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오프그리드 하우스는 전기와 수도, 가스 공급 등이 외부로부터 차단이 되어서 스스로 자급자족해야 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전기는 태양광으로 해결하고, 수도는 정해진 물의 양만큼만 쓸 수 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출연자는 주어진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 주어진 미션은 다양했다. 세 가지 새 소리 녹음하기, 계곡의 물소리 담아오기, 갖고 있는 물건의 수량을 절반으로 줄이기, 하루에 하나의 반찬으로 밥 먹기,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기 등이었다.

흥미로운 미션들이었다. 이 미션들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함께 시도해볼 만한 일이기도 하다. 가령 계곡에 내려가서 물소리를 듣고 녹음하는 동안 돌돌돌 흐르는 물소리와 부드럽게 굴러가는 물의 바퀴와 물의 유연함이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차게 될 것이다. 새소리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까마귀와 방울새, 직박구리, 꿩이 우는 것을 듣는 동안 우리는 새가 앉은 나뭇가지, 새의 부리, 깃털, 몸집의 크기, 울음의 높이 등등 한 마리 새의 모든 것을 보고 듣게 된다. 그러면서 새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앉고, 날갯짓하고, 우는 것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된다. 내 내면에 다른 존재의 공간이 생겨나는 것을 수용하게 된다. 그 공간이 매우 새롭다는 것도 곧 알게 된다.

중앙일보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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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하고 있는 그 일에만 온전하게 정성을 다하라는 것일 테다. 밥 먹을 때는 밥맛만을 알라는 것일 테다. 걸을 때에는 걷기만 하라는 것일 테다. 단둘이 있을 때에는 마주 앉은 그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쓰라는 것일 테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있는 그것에 마음을 쏟으라는 뜻일 테다.

그러나 집중하고 골몰하는 일은 참 어렵다. 마음은 구름처럼 잘 흩어지고,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불교에서는 어미 닭이 알을 품듯이,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지금의 순간에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어미 닭이 알을 품되 알의 온기가 늘 이어지도록 품는 것처럼 하고, 고양이가 쥐를 잡을 적에 생각과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을 바쁘게 살고 있고, 내 몸 하나 챙기기에도 벅차다. 날카로운 의견을 주고받고, 또 모욕감마저 느끼게 된다면 지치고 나른해져서 일어나기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된다. 이러할 때에는 나의 전원을 잠시 꺼두어야 한다. 나를 느슨하고 단조로운 여건 속에 있게 해야 한다. 펼친 것을 접을 필요가 있다. 접으면 잠잠해지고, 잠잠해지면 마음에 풋풋하고 넉넉한 공간이 생겨난다. 이 경험은 매우 유익하다.

시인 김용택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눈 오는 날 마루에 걸터앉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무는 눈이 오면 그냥 받아들여요. 눈이 쌓인 나무가 되는 거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그냥 나무가 아니라. 새가 앉으면 새가 앉은 나무가 되는 거죠. 새를 받아들여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주는 거죠.”

이러한 생각은 이승훈 시인의 시 ‘바람’에도 잘 드러나 있다. “풀밭에서는/ 풀들의 몸놀림을 한다./ 나뭇가지를 지날 적에는/ 나뭇가지의 소리를 낸다(…)// 풀밭에 나뭇가지에/ 보일 듯 보일 듯/ 벽공에/ 사과알 하나를 익게 하고/ 가장자리에/ 금빛 깃의 새들을 날린다.” 바람은 풀밭에 가면 풀의 몸이 되고, 나무에게 불어가면 나뭇가지가 되어 흔들린다는 것이다. 바람이 이처럼 풀이 되고 나뭇가지가 되는 것은 ‘나’라는 완고한 생각을 버렸기에 가능할 것이다. ‘나’라는 생각을 버리고 다른 것에 맞췄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무엇인가에 맞춰서 하되, 그냥 하기만 하되 집착 또한 없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내 내면에 다른 존재의 공간을 만드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배음(背音), 나의 기다림, 조용함, 쓸쓸함, 즐거움 같은 것을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것이 되어보는 경험은 내가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경험이 된다. 자신을 자발적으로 간소한 삶의 조건 속에 놓아두려고도 할 일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마음이 깨끗한 계곡의 물소리에 의해 회복되고, 맑은 날의 새소리에 의해 회복될 것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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