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선언은 예상을 뛰어넘는 전향적이고 담대한 조치이다. 조건 없이 핵동결(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전례가 없다. 북한은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라고 했다. 투명성 언급은 향후 사찰을 허용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핵화를 향한 첫 단추인 핵동결이 시작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무력·경제건설 병진’ 노선 폐기도 비핵화에 맞춰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는 북한이 핵·미사일을 앞세운 대결적인 국가 노선을 벗어나 국제사회와 공존하는 정상국가로 가겠다는 뜻이다.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년 동안 추진한 핵·경제 병진 노선을 통해 상당한 경제 성장 성과를 거뒀다. 경제발전에 집중하겠다는 이번 선언은 이런 결과를 토대로 대외 개방을 해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이라는 형식을 갖춘 점도 주목된다. 객관적으로 결정을 되돌리기 어렵게 한 것이다. 북한의 선언과 발표를 기만전술로 치부하는 시각이 나오지만 합당한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
북한의 핵실험 중단 선언이 비핵화 논의에 긍정적 환경을 조성했지만 완전한 비핵화의 길을 담보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핵실험 중단의 명분으로 핵무기의 선제적 불사용과 핵 군축, 비확산을 언급했다. 핵 군축과 비확산은 전형적인 핵보유국의 논리로, 핵무기를 경제적 보상 등을 받고 줄일 수 있지만 일방적으로 핵을 폐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에 미래 핵개발은 접었지만 과거 및 현재 핵에 대한 협상과 보상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셈이다.
북핵 문제의 최종적 타결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대담한 핵폐기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핵폐기와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 핵합의 후 실행 단계에서 어긋난 전례를 감안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나흘 뒤인 오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처음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주의제로 놓고 논의한다. 남북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북·미 정상이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게 길을 닦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되 비핵화의 개념도 명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보유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완전한 비핵화가 목표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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