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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직원들 "조씨 일가 몰아내자"...대한항공 이지경까지 온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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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일가의 안일한 대응
'갑'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을'들의 반란

조현민 전무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때 물컵을 들고 용도에 맞게 물을 마셨다면, 아무일도 없었을 것이다. 조 전무는 아침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제작비를 한 푼도 주지 마라"라고 소리를 지르며 상대방에게 물을 뿌렸다.

대한항공 조현아·조현민 자매가 22일 결국 사퇴했다. 그러나 이들 자매의 사퇴만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경찰 조사는 시작됐고, 관세청도 오너 일가 밀수 의혹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았다. 당사자가 진정성있게 빠르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으면 끝날일을, 버티고 버티다가 사태를 키웠다. 국민 감정을 건드렸고,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국민들은 청와대에 대한항공의 사명에서 ‘대한’이라는 이름을 빼라고 청원했고, 갑질에 지친 대한항공 직원들은 오너 일가의 일탈을 앞다퉈 언론사에 제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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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조현민 당시 진에어 전무가 객실승무원을 맡아 탑승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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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2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저의 여식이 어리석은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땅콩회항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대한항공 오너 일가는 땅콩회항 사건 이후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 대한한공 오너 일가는 직원들을 머슴 부리듯 했고, 협력업체에는 온갖 갑질을 일삼았다.

땅콩회항 사태 사과 이후 4년이 지난 이날 조 회장은 “제 여식이 일으킨 미숙한 행동에 대하여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조 전무의 물벼락 갑질이 알려진 지난 12일부터 열흘간 대한항공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해봤다.

◇ 물뿌리고 베트남으로 휴가간 조현민

시작은 미미했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을 뿌린 사실이 지난 12일 익명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스마트폰 앱 블라인드에 올라오면서 부터다.

조 전무는 회사를 통해 짧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베트남으로 휴가를 떠났다. 이 때까지만 해도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땅콩회항 사건과 달리 큰 위법을 한 것은 아니니 곧 잠잠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베트남 휴가 기간에 한 인터넷 매체에서 조 전무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임원에게 고성과 폭언을 하는 음성파일이 공개되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조 전무가 15일 새벽 귀국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귀국 후 가장 먼저 한 일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잘잘못을 따지겠다며 변호사부터 선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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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의 대응도 아쉽다. 여론은 조 전무가 회사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대한항공은 대기발령 조치만 취했다. 당시 대한항공은 조 전무에 대한 대기발령을 내면서 대한항공 전무직을 포함해 정석기업 대표이사 부사장, 한진관광 대표이사, 칼 호텔 네트워크 대표이사, 진에어 부사장 직위는 유지된다고 밝혔다.

조 전문의 물벼락 갑질은 시간이 지나자, 오너 일가의 일탈로 번졌다. 특히 조 전무의 어머니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의 갑질이 알려진 것이 치명적이었다.

◇ 어머니 이명희 이사장 갑질 행태 공개 결정타

이후 물벼락 사태는 이명희 이사장이 운전기사·가정부·직원 등에게 일상적으로 욕설과 폭언을 했다는 주장이 이어지면서 대한항공 오너 일가로 확대됐다. 지난 18일 자택 공사를 하던 작업자에게 폭언하는 상황을 담은 음성 파일도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쯤 되자 갑질에 견디지 못한 을들이 SNS 오픈 채팅방을 만들어 오너 일가의 일탈을 제보하기 시작했다. 이명희 이사장이 인천 하얏트 호텔의 조경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화단에 심겨 있던 화초를 뽑아 얼굴에 던졌다거나, 이 이사장이 사적인 일에 회사 직원을 동원하고 회사 업무에 참여하며 월권을 행사했다는 증언도 모두 대한항공 직원들의 입에서 나왔다.

"조씨 일가를 몰아내는 궁극의 목표를 위해 알고 있는 비리를 모두 공유하자"며 대한항공 갑질 제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는 600명이 넘는 전현직 직원들이 가입했다. 이 곳에서는 대한항공 오너 일가가 양배추·체리에서부터 값비싼 드레스·가구까지 세관에 신고하지 않은 채 밀반입했다는 제보가 나왔다. 또 이 과정에서 항공기와 직원들을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 오너 일가에 대한 경찰 조사와 관세청 밀수 의혹으로 확대

경찰은 지난 19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사무실에서 조 전무의 개인·업무용 휴대전화 2대와 회의에 참석했던 임원의 휴대전화, 컴퓨터 등을 압수해 분석 중이다. 이명희 이사장에 대해서도 경찰이 내사에 착수했다.

관세청도 나섰다. 밀수 여부 사실 확인을 위해 조양호 회장 일가의 최근 5년간 신용카드 사용 내역 조사에 나섰다. 조양호 회장 일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됐다.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들의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면 오너 일가 전부가 배임이나 탈세 등의 혐의로 형사 처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양호 회장이 이날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조현아·조현민 자매를 모든 그룹내 직위에서 사퇴시키겠다고 발표한 것도 경찰과 관세청 조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또 회사 이미지가 추락할대로 추락해 회사 경영 위기가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밀수 의혹이 사실이면 오너 일가가 모두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며 “또 조원태 사장 비리까지 제보가 들어오게 되면 미래 회사 경영도 불투명해지는 만큼 서둘러 조현아, 조현민 자매를 모두 경영에서 물러나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참 사회부장(pumpkin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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