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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아주스페셜-임시정부의 맏며느리 수당 정정화㉑]등장인물:장준하, 광복군 출신… 민주화운동의 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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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국내 진공작전 투입… 유신독재 반대하다 의문사

아주경제



평안북도 선천 출생으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4년 일본군에 학병으로 끌려가 중국 쑤저우(徐州)에 배치되었으나, 6개월만에 탈출해 두달 동안의 사투 끝에 1945년 1월 충칭에 도착했다. 이때의 일을 기록한 자전적 회고록이 <돌베개>다. 광복군에 합류한 뒤 OSS의 군사훈련을 받고 국내진공작전에 투입됐다.
광복 후, 백범을 수행해 귀국했으며, 1953년 부산에서 <사상계(思想界)>를 창간했다. <사상계>는 이승만 독재정권 시절 민의의 기관지 역할을 수행했으며, 4월혁명의 숨은 공로자 가운데 하나였다. 1966년, 한비밀수사건 때 대통령명예훼손 혐의로 검거되어 복역하였으며, 다음해 서울 동대문을구에서 신민당 공천으로 옥중 출마해 당선됐다.
1971년 신민당을 탈당하고 사상계 사장에 복귀했으며, 1973년 통일당 최고위원이 되었다. 1974년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고, 굽히지 않고 민주화운동을 이끌어 10여 차례 투옥되었다. 1975년, 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본부의 이름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고,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남보라 기자 nbr1214@ajunews.com

남보라 nbr1214@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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