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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강병준의 어퍼컷] 사라진 장관, 잊혀진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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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전자신문 산업정책 총괄 부국장


사면초가다. 체면도 구겨졌다. 고용노동부 장관 얘기다. '국민 알 권리'를 내세워 추진하던 삼성전자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가 잇따라 제동이 걸리면서 집중 포화를 맞았다. 수원지법은 최근 삼성이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공개 보류를 결정했다. 앞서 중앙행정심판위원회와 반도체전문위원회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입장을 고수하기도, 그렇다고 뒤집기도 머쓱한 상황이 벌어졌다.

고용부 헛발질은 이 뿐이 아니다. 최저임금제부터 근로시간 단축까지 굵직한 이슈에서 불통 이미지가 굳어졌다. 산업계가 부글부글 끓는 건 너무 당연하다. 그러면서 정작 본업은 뒷전이다. 가장 큰 업무인 일자리와 관련해서 아직도 마땅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계는 일자리 호황인데 우리만 불황이다.

고용부 장관만 그럴까. 다른 장관도 '함량 미달'이다. 국토부 장관은 다산신도시 '실버택배'에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이틀만에 백지화해 빈축을 샀다. 환경부 장관은 미숙한 미세먼지와 재활용 쓰레기 처리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서 쓴소리를 들었다. 교육부 장관은 100개 넘는 입시안을 검토하고 결정하지 못해 국가교육회의에 떠넘겼다. 소신도 없고 발표하는 정책마다 오락가락해 혼란만 가중시킨 후 급기야 책임까지 떠넘겼다.

산업부와 중기부 장관도 보이지 않는다. 산업부는 그나마 삼성보고서 공개를 막으면서 면피 했지만 세탁기와 태양광 세이프가드, 미·중 통상전쟁, 한국지엠 사태에서 별 역할을 못했다. 중기부 장관은 여전히 '독불장군'이라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에서 부로 승격되고 '아이콘 부처'로 관심이 높지만 위상에 걸맞은 정책은 감감무소식이다. 복지부 장관은 '문재인 케어'라는 임무를 짊어졌지만 세부 실행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가 입이 아플 지경이다. 정권 초기를 감안해도 '장관 실종'은 심각해 보인다. 내달이면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을 맞는데 자리를 잡지 못하는 행정부를 보면 답답할 따름이다. 오죽하면 장관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는 비판까지 들린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개인 자질을 꼽을 수 있다. 장관이 무능하기 때문일까.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국정 경험이 일천해서 시행착오는 겪을 지라도 경력을 볼 때 모두 평균 이상 인물이다. 두 번째는 청와대로 지나친 '권력 쏠림'이다. 절반은 맞아 보인다. 최근 국정을 주도한 건 치솟는 대통령 지지율이다. 대통령 주변에 날고 기는 실세가 포진한 것도 사실이다. 이를 감안하면 틀린 얘기는 아니다. 청와대가 움직이면 아무래도 행정부는 눈치를 보고 숨을 죽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것만으로 장관 실종 사태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힘빠진 관료 집단이다. 공무원이 제대로 뛰지 않는다는 말이다. 100% 정답은 아니지만 적전으로 공감한다. 지금 정부는 관료에 배타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관은 색안경을 끼고 못 미더워하고, 일부 공무원은 적폐로 몰려 다음 정부에 불이익을 당할까 소극적이면 문제는 심각하다. 한 방향으로 같이 뛰어도 부족할 판에 서로 믿지 못해 눈치만 본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빤하다.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장관은 경험많은 참모가 보완할 수 있다. 장관을 보좌하는 실장, 국장, 과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정부 조직은 산으로 간다. 정책에 손발이 안맞으면 결국 국민만 손해다. 춤추는 주역은 청와대와 장관이 아니라 현장 공무원이어야 한다. 그래야 장관도 존재감이 살아나고, 정책도 힘을 받는다.

강병준 전자/산업정책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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