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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두바이에서 바라본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는 왜 변화를 주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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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AP


[두바이 파일럿 도전기-50] 북한 등을 제외하고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들 중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에 거세게 개혁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패션쇼가 개최되고 할리우드 영화가 상영되며, 여자도 올 6월부터는 운전을 할 수 있게 되는 등 여권 신장도 이뤄지고 있다. 모두 불과 몇 년, 아니 1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아랍의 맹주이자 이슬람 세계의 큰형님 역할을 하고 있는 사우디의 이 같은 움직임은 필자가 살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한 중동지역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의 깊게 바라볼 수 밖에 없다.

16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킹 압둘라 금융지구에서 할리우드 영화인 '블랙 팬서'의 정식 개봉은 이와 같은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무려 35년 만의 영화 상영 재개다. 상영 행사에 참석한 아와드 알라와드 사우디 공보부 장관은 "사우디가 보다 활기찬 경제와 사회로 변모하는 상징적 순간"이라고 말했다. 리마 빈트 반다르 사우디 공주는 "이곳에 오게 돼 영광이다. 내가 오늘 저녁에 경험하는 것을 모두가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사실 사우디에서는 1970년대만 해도 영화관이 있었다. 하지만 1979년 이란이 이슬람 혁명으로 보수적인 신정일치 통치로 급변했고, 이에 영향을 받은 사우디 역시 이슬람 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1980년대 초 모든 영화관이 폐쇄됐다. 하지만 사우디의 정치, 경제, 사회를 완전히 바꾸는 '비전 2030'이 추진되면서 이 같은 개혁이 실시됐다.

사우디 정부는 상업영화 개봉을 통해 경제적인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영화를 보기 위해 인근 바레인, UAE 등으로 나갔던 사우디 국민이 이제는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고서도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사우디 정부는 영화 산업이 활발해지면 연간 1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3만개의 새 일자리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주 사우디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에서 개최된 패션쇼도 큰 변화였다. 여자들이 검은색 아바야만 입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알록달록한 색깔 옷들의 향연인 패션쇼가 열린다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패션 주간 행사에는 구찌 운동화나 크리스찬 루부탱 하이힐, 샤넬 핸드백 등 다양한 패션소품들이 소개됐다. 중간에 행사가 취소될 뻔도 하고 몇 번 연기되는 등 부침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첫 숟갈을 잘 떴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거기에 사우디 왕실은 최근 서방의 이종교 사절단과 지도자를 잇달아 만나면서 온건한 이슬람 국가로 변화를 부각하는 동시에 외부에 '이슬람 포비아'를 희석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레바논 마론파 기독교 베샤라 알라히 총대주교를 리야드에서 만났으며, 지난달 미국 뉴욕을 방문해서는 유대교와 천주교 지도자들을 만나 종교 간 대화와 접촉을 강조했다.

이 같은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최근 권력을 이양받고 전권을 휘두르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두바이 등 인근 국가 도시들의 움직임에 영감을 받으면서 오일머니에 의존하던 데서 벗어나 비즈니스, 관광, 레저 산업의 다이내믹한 지역으로 자리매김하려 애를 쓰고 있다. 아울러 해외 투자와 방문객 유치에도 힘쓰고 있다.

세계 경제의 석유 의존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고 여기에 셰일가스의 발견 등으로 인해 이제는 더 이상 오일머니로 정부 지출과 일자리 창출을 모두 망라할 수 없게 됐다. 또한 이슬람 성직자들의 영향력도 소셜미디어의 등장과 기술발전 등으로 점점 그 파워가 예전만큼 강력하지 않게 됐다. 아무리 정부에서 이른바 '퇴폐적인' 문화를 즐기지 말라고 해도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로 가서 놀다오면 그만인 세상인 것이다.

게다가 사우디 3200만명의 인구 중 60%인 2000만명 정도가 30세 이하다. 이들은 벌써부터 부모세대가 이른바 '석유수저'로서 누리던 각종 혜택과 복지를 누리지 못할 것이란 전망을 받고 있다. 사우디의 젊은 세대들이 한꺼번에 사회에 진출하고 있는데 이들은 공공부문의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아 민간부문에서 부모세대보다 더 열심히 오래 일해야만 하는 처지다. 거기에 주거비용이 증가하고 보건 및 교육비용도 치솟고 있다.

전망은 어떨까. 개인적으로는 빈 살만 왕세자가 개혁개방에 대한 뜻이 확고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한 인구의 절반 이상이 30대 이하 젊은 인구란 점도 희소식이다. 여성인력을 아직 거의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원래 정체에 빠진 나라가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경제에 활기가 돌게 하는 거시경제정책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인력의 활발한 사회활동이다.

최근 들어 사우디 정부가 외국인들에게 관광비자 발급을 위한 준비를 순조롭게 하고 있고, 2025년까지 로봇과 IT 중심의 신도시 '네옴'을 건설하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현재 세계 최고 높이 빌딩인 UAE의 부르즈 할리파를 제치고 세계 최초 1㎞ 빌딩인 '제다 타워'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같은 미래 먹거리 준비의 일환이다. 결국 좋으나 싫으나 변화를 꾀해야 할 시점이란 것이다.

[Flying Johan/ john.won3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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