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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숲으로 간 화석학자, 자연과의 공존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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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리처드 포티는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 삼엽충만 30년 동안 연구했다. 2억~5억년 전 고생대 시절 세상을 지배한 생물을 연구한 학자다. 멸종한 동물의 화석을 연구하는 학자의 마음은 어떨까.

이미 사라진 생물을 연구하려면 결국 현존하는 생물과 비교하고 분석해야 한다. 공룡을 연구할 때 도마뱀 같은 파충류를 연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포티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생 박물관 한편에서 삼엽충 화석을 바라본 그는, 지구의 시간과 공간과 면밀히 소통하고 공명하는 감수성을 지닐 운명을 타고났다.

"평생 박물관에서 일해온 내게 마침내 건물 밖으로 나가 바깥 공기를 마시며 살아갈 기회가 왔다."

포티는 최근 한국어로 번역 출간한 저서 '나무에서 숲을 보다(The Wood for the Trees)'를 이렇게 시작한다. 평생을 짓눌러 온 굴레에서 벗어나 자연과 제대로 소통할 기회를 얻은 기쁨이 묻어난다. 그는 "이제 숨어 있던 자연주의자의 본성이 나더러 살아 있는 동식물과 함께하라고 한다"고 말한다. 그는 2011년 7월 1.6㏊(약 5000평) 넓이의 땅을 산다. 너도밤나무와 블루벨이 어우러진 숲으로 포티는 '그림다이크 숲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포티는 숲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뒤 곧바로 일지를 썼다. 지구에서 사라진 생물의 흔적을 공부하던 그가 살아 숨쉬는 생명의 움직임을 기록했다. 마치 본인 스스로 화석을 만들겠다는 것처럼. 하지만 포티는 결코 자연을 관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했고 인류 역사는 어떻게 발전했는지 다양한 층위에서 보여준다.

현대인에게 숲은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보듯이 신비롭고 매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소로 보인다. 그러나 숲은 인간, 상업, 시장과 긴밀히 연결됐다. 숲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모습을 바꿨다. 나무 또한 마찬가지다. 생활에 필요한 가구는 여전히 나무로 만든다. 지구와 생명체는 여전히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

숲 관찰기를 읽으면 포티의 따뜻하고 성실한 성품이 묻어난다. 그는 숲의 기록을 쓰려고 2000년 이상 된 고고학 유적을 찾고 각종 가구에서 천막용 나무못 제작까지 오랜 변천사를 공부했다. 각종 자료를 찾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치밀하게 서술해 간다.

이 책의 원제 'The Wood for the Trees'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의미의 속담 'can't see the wood for the trees'에서 왔다. 포티는 과감히 보지 못한다는 말을 속담에서 뺐는데, 나무를 통해 숲을 보겠다는 야심이 드러난다. 포티는 4월부터 시작해 이듬해 3월로 끝나는 12개 단락으로 책을 구성했다. 주인공은 그림다이크 숲에 있는 모든 것이다.

인간은 물론 겨울잠쥐, 사슴, 버섯, 박쥐, 거미까지 생명은 모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또 이 책을 읽으면 영국 중남부 칠턴힐스로 대표되는 역사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작은 곤충마저도 세밀히 관찰하는 포티의 시선 덕분에 자연 전체의 오묘한 변화에 공감할 수 있다. 과학책이지만 지식을 넘어 인문서적만의 통찰을 부여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 된다.

물론 책을 읽는 과정은 다소 지루하다. 하지만 포티처럼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을 한 명쯤 안다면, 그가 어떤 삶을 사는지 한번 물어보면 좋을 듯하다. 작은 생명의 움직임에도 감격하면서 생의 약동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에는 인간의 눈으로만 봐서는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움이 너무도 많다.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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