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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덤빌테면 덤벼봐…쓰러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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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칠레 영화 ‘판타스틱 우먼’-

세상의 차별과 편견 맞서

정체성·사랑 지키기 나선

트랜스젠더 여성 분투기



한겨레

영화 <판타스틱 우먼>의 한 장면. 찬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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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 자아를 인정받으며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칠레 영화 <판타스틱 우먼>(상영중)은 사회로부터 이 모든 것을 부정당한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마리나(다니엘라 베가)는 클럽에서 노래하는 트랜스젠더다. 그에게는 나이 많은 남자친구 오를란도(프란시스코 리예스)가 있다. 마리나의 생일, 오를란도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남자친구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마리나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의사는 그에게 대뜸 신분증을 요구하고, 남자친구가 계단에서 굴러 생긴 상처가 의심스럽다며 경찰에 신고한다. 남자친구의 전 부인과 아들은 마리나를 괴물 취급 하는가 하면, 재산을 노리고 늙은 남자를 죽인 것이 아닌지 추궁한다. 처음에는 마리나를 ‘약자’로 바라보는 듯싶었던 여형사도 결국엔 마리나에게 알몸 신체검사를 강요하며 수치심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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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판타스틱 우먼>의 한 장면. 찬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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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애인의 죽음을 온전히 애도하지도 못한 채 세상의 편견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트랜스젠더의 투쟁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처음엔 겁을 먹고 도망치려 했던 마리나는 점차 맞서 싸운다. 남자친구가 선물한 개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가족들이 오지 말라고 경고한 장례식장에 찾아가 한바탕 소동도 벌인다. 화장장에 찾아가 기어코 남자친구와 마지막 인사도 나눈다.

영화에는 마리나의 현실을 은유하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여럿 등장한다. 마리나가 거울을 바라보는 신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매 순간 거울 속 마리나의 모습은 위태롭게 흔들린다. 마치 세상의 편견과 배제에 상처받은 영혼을 비추는 듯이. 남자친구가 남긴 열쇠의 비밀을 찾아 사우나에 간 마리나는 처음엔 여탕에 들어갔다 남탕으로 이동하지만 어느 쪽도 그의 성별을 의심하지 않는다. 마리나가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남성과 여성의 경계에 선 존재’임을 드러내는 신이다. 갑자기 불어온 강풍에 온몸으로 맞서며 힘겹지만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마리나를 비추는 장면은 세상에 굴하지 않는 마리나의 강인한 의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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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판타스틱 우먼>의 한 장면. 찬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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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차갑고 차분한 질감으로 마리나를 향한 차별적 시선을 다각도로 그려내는 세바스티안 렐리오 감독의 날카로운 연출력이 놀랍다. 편견에 맞선 마리나의 끈질긴 분투를 진정성 있게 그려낸 실제 트랜스젠더 배우 다니엘라 베가의 연기력도 흡인력을 높인다.

영화는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의 유명한 아리아 ‘옴브라 마이 푸’(Ombra mai fu·그리운 나무 그늘이여)를 부르는 마리나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무대에 올라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마리나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존재 자체로 존엄한 한 인간’일 뿐이다.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각본상 등 3개 부문, 제90회 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영화상 등을 수상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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